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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로 전하는 마음의 편지(10)

 


2016년 화창한 봄날에 이 도령이 어사화를 꼽고

익산 시장이 되어 나타나 문화 예술교육이 활짝 꽃 피우길 기대한다.

 
  날마다 호접몽을 꾸며 행복하리라 믿었던 춘향이는 이도령과 생이별을 하고 극악무도한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삼단같이 길고 정갈하던 머리카락은 얽히고 설켜 쑥대머리가 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단장이 끊어지는 아픔을 누르고 슬피 우는 상황을 이다은 지부장이 소리를 한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잔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을 보고지고~~ 연인신혼 금슬우지 나를 잊고 이러는 가~, 막왕망래 막혔으니 앵무서를 내가 어이 보며 전전 반측 잠 못 이루니 호접몽을 꿀 수 있나.

변학도보다 더 무섭게 몰아치는 무언가에 쫓겨 어제도 새벽 3시 30분까지 컴퓨터에 앞에 앉아있었다. 매일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잠을 안자는 건지, 못 자는 건지 쑥대머리 귀신 형용이 되도록 머리를 문지르고 두 눈을 쿡쿡 눌러 가며 일을 한 지가 벌써 수개 월 누구를, 보고 싶어서, 무엇을 이루고자 이러는가? 소리는 소리대로 흐르고 내 마음은 마음대로 흘러가는 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춘향의 절절함이 내 가슴을 친다.



  손가락에 피를 내어 사정으로 편지 허고, 간장에 썩으은 눈물로 임에 화상을 그려 볼까?  간장이 썩어 먹물보다 더 진한 검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그 눈물로 임의 얼굴을 그리고, 애절한 사랑을 담은 혈서를 이 도령에게 전하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춘향의 애절함과 나의 애절함이 천둥소리가 나게 부딪쳤다가 시나브로 사라진다. 죽으면 끝나는가? 나만 사라지면 내가 보았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가? 죽을 뻔한 순간이 있었다. 목숨 줄을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 때 할 일을 두고 죽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죽더라도, 귀신이 되어서라도 내 할 일은 내가 꼭 해결해야 한다. 그리 못하면 구천을 떠 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라진다 해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 내가 사라져도 그 문제는 남아 누군가가 나만큼의 고통을 겪으며 그 문제에 봉착했을 때 꼭 그만큼의 자리에서 좌절 할 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는 이다은 지부장일 수도 있고, 아직은 태어나지 않았지만 차세대를 이끌고 나아가야 할 소리꾼일 수 도 있다. 그것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겨우 밑그림 몇 장 그려 놓고 혼자 실망하고 도와 달라고 징징거리던 내 모습이 아주 부끄럽게 지나간다. 내 눈물이 검게 변해야만 판소리 대중화라는 그림을 완성 시킬 수 있으리라. 손도 발도 묶여 있어 혈서도 님의 얼굴도 그릴 수 없는 춘향이는 이제 자신의 무덤 근처에 있는 나무와 돌까지도 자기와 똑같이 임을 그리다 고착화된 그리운 덩어리, 한의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소리를 헌다. 무덤 근처 섯는 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있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생전 사후 이이이이 원통을 알아 주리가 뉘 있더란 말이냐? 방성통곡에 울음을 운다.



  슬프다. 애절하다는 마음보다 아름답다. 나도 저런 사랑을 허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아유는 어사가 된 이 도령과의 만남이 준비된 이별임을 알기 때문이고, 내 아픔은 판소리 200년사의 굴곡을 넘어 300년사에 접어 든 판소리가 일제 강점기 때 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절망감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의문을 품은 소리판에 대한 희망 반 절망 반의 상황에 대한 결말은 언제나 연좌제처럼 이다은 지부장의 목숨 줄을 감아쥐고 흔든다. 그래서 포기하려 했고, 한 때는 포기 했었다. 그런데 포기 할 수 없게 만드는 여러 가지 현상들과 전통 판소리 보존과 대중화를 위한 노력! 내 삶이 거기에 꽂혀 7년 째 요지부동이다. 지난 1년 동안 왜 나야?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 데, 그만한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없고 없으면서 왜 나야. 왜 너야. 라며 나를 객관화 시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도망치다 발등에 손목까지 골절되는 고통을 겪으며, 소리판을 살리려고 이 일을 하는 지금의 고통보다 안 하는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어쩌다 내가 이 길에 들어 돌아 갈 곳도 나아 갈 곳도 없는 암 흙에 갇히게 되었는가 묻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 주변에 있는 돌도 나무도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르고 추임새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각오로 변학도를 따르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지만 당당했던 춘향이처럼, 아무 것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리판이 걸어 갈 새 길을 만들어 가리라. 다짐하는 내 귀가에 이 도령의 어사출두 소리가 들려온다. 암행어사 출두야~



  소리판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탓에 고통스러웠던 지난 18년 세월은 춘향이가 옥중 생활을 묻어 버렸듯 툴툴 털어 묻어버리고, 판소리& 스피치 학교를 통해 <판소리 세 배로 즐기기>프로그램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전 인류가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를 수 있는 시스템으로 확실히 자리 메김 할 때까지, 완성시켜 가자. 지금은 판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 줄 이 도령을 기다리지만, 또 다시 18년 세월이 흐르면, 그 때는 내가 이 도령이 되어 절망에 빠진 그들의 희망이 될 것이다. 큰 바위 얼굴이 된 어니스트처럼~~, 지금도 나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당연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들이 거는 기대에 혈서로 답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산다. 정신 상태가 멀쩡한 데 잘 시간이 되었다고 잠을 자 본 적이 언제였던 가 싶다. 소리판 축제가 열리는 소리 마당에 추임새가 넘쳐흐르는 호접몽을 꾸려면 지금 잠을 자는 것이 좋을지, 잠을 참아 가며 공모 서류를 작성하고, 북을 치며 판소리 투어를 준비해야할지 24시간이 늘 짧다.



  2016년이 온다.

  2016년은 여러 가지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익산의 소리꾼과 국악들에게 일자리 창출을, 그리고 지역 아동센터 어린이들과 초. 중. 고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얼을 심어주는 정체성 교육을 겸한 우리 소리 배우기와 흥겨운 공연이 정착화 되길 기원해 본다. 익산시민이 먼저, 그리고 전 인류가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를 때까지 소망하며, 2016년 화창한 봄날에 어사화를 꽂은 이 도령이 익산 시장이 되어 나타나 문화 예술교육이 활짝 꽃 피우길 기대해 본다.

 

 

글 김광심 (한국판소리보존회 익산지부 사무장)

 


- 이 글은 참여와자치 소식지 73호 판소리로 전하는 마음의 편지(10)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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