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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이가 판소리 200년 사에 올라 갈 수 있었던 이유


맹렬이가 판소리 200년 사에 올라 갈 수 있었던 이유


  송홍록 국창이 대구 감영에서 소리를 할 때 관중들이 소리를 잘 한다고 추임새를 하는데 경상감사의 수청 기생인 맹렬이만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이유를 묻자 명창이긴 하지만 미진한 곳이 있다고 하자 그 길로 운봉으로 돌아가 토혈을 하며 득음한 후 맹렬이 앞에서 소리를 했는데 그 소리에 반해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우여곡절 끝에 판소리 전공하기로 한 아홉 살 다은이가 소리 연습을 하는 턱 밑에 앉아 들어 주면 배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들으면 책을 뒤적거리거나 콩 집기 등 딴 짓을 하느라 소리가 목에서 머리에서 마구마구 뒤섞여 나온다. “이다은! 지금 그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 줄 알고 소리 하냐? 그러려면 소리 그만 둬라. 엄마도 듣기 싫은 소리 누가 듣고 싶겠냐?” 라고 소리를 지르면 소리가 금방 달라진다. 춘향가 6시간 30분 완창을 하는데 가사에 신경 쓰면 소리에 대한 공력이 떨어지고, 공력 들여 그 소리에 깊이 빠지면 다음 가사가 생각이 안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가사가 틀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발표 끝난 다음 날 가사 집 펴 들고 동영상 보니 틀린 부분이 많다.  “공연료 받은 공연이었으면 공연료 돌려 줘야겠다. 체크한 부분 스무 번 이상 연습해라.” 라고 말하며 틀린 부분을 표시한 책을 주니 두 말 않고 연습한다. 그렇게 20여년 피드백을 하니 다은이는 돌덩이처럼 딱딱한 소리배가 자리 잡혔다.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을 했는데 그래도 더 배울 것이 남았냐? 이제 레슨 그만 가면 좋겠다.”라는 아버지께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있으니 제가 벌어서 다닐게요.” 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이면 서울로 소리 공부를 하러 간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판소리 대중화를 위해 라온 국악논술스피치 연구소를 개원해서 매주 월요일 7시 복식호흡에 소리를 실어서 통성으로 소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판소리 이론과 대중화의 염원을 담은 원고로 토론하고 발표하게 하는 스피치 수업을 하고 자유학기 체험 처로 등록되어 특강도 나가고 개인레슨도 한다. 그러다보니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소리 한지 오래된 선생님이 계시는데 첫 소절은 배에서 나오는 소리로 시작하지만 복식호흡에 소리를 실어 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인지 소리를 하다보면 목에서 소리가 나온다. 고치려고 마음먹으면 금방 고치실텐데 싶어 오랜 세월 망설임 끝에 다은이에게 했던 것 1%도 안 되는 강도로, 맹렬이가 송홍록 명창에게 눈을 흘겼던 정도로 큰 소리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지금 부르고 있는 소리는 통성이 아니라고 했다. 처음에는 인정하셨는데 한 달 정도 지나 “통성이 아니라면 그동안 지도했던 선생님들께서 왜 아무 말씀도 안했겠느냐며 다은이만 소리 잘하는 것 아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슬펐다.



 선생님들은 왜 호흡과 소리의 연관성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호흡을 배워서 소리를 얹어가는 법을 익힌 것이 아니라, 소리를 하다 보니 호흡이 저절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제자들도 체득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세 전 후의 아이들이라면 몸이 미리 알고 따라가 저절로 체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에 목으로 가슴으로 말하고 소리하는 습관이 굳어있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복식(단전)호흡을 배우고 호흡에 소리를 얹어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무의식적인 체득은 어렵다. 단전호흡이 안 되면 진정한 통성이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이다은 지부장은 단전호흡에 소리를 실어 통성으로 소리를 하니 돌덩이처럼 딱딱한 배를 가지고 있다. 통성으로 오랜 세월 소리를 하면 배가 이렇게 된다. 라고 설명하며 지금 소리를 잘한다는 말이 아니고 기본기를 갖추었으니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하면 국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어미 등쌀에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시고 그러다 애 잡는다. 죽으면 어쩔 것이냐?”고 야단치시던 다은이 판소리 지도 선생님과 “제발 그만 하라”고 다은이 역정을 들며 안타까워하던 남편에게  “서편제에서 송화 애비는 송화를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두 눈을 멀게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슬퍼봐야 슬픈 소리, 한이 실려야 한 맺힌 소리, 그 한이 풀어지는 것을 몸으로 체득해야 해원의 소리를 할 수 있는데, 다은이가 워낙 낙천적이고 밝아서 그런지 슬픔을 모르겠다며 슬픈 소리조차도 방실방실 웃으며 소리하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어요? 제가 마음 편하게 외출 한 번 못하고 다은이 스케줄에 맞춰 판소리 연습하는 것 들어 주고 일부러 큰 소리로 꾸중하고 때리며 내 인격 망가지고 그 모든 것 나도 쉽지 않아요. 명창도 명창 어미도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니 지켜 봐 주세요.”라고 말하며 다은이가 슬퍼서 울 때까지 혼내고 때린 후, 슬픈 소리가 나오면 오늘 맞고 울었던 생각을 하면서 소리를 하라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처음에는 큰소리로 혼내고 가끔 매를 들어 때리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어도 가르쳤다는 보람이 있었는데 화를 내다보니 정말로 화가 나고 그 화가 내 손에 힘이 들어가게 할 때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많이 아프고 슬프고 내가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고통스런 갈등의 시간을 보내며 포기 하고 싶었지만, 다은이가 대한민국 인재 상을 받고 다섯 바탕 완창 마지막 수궁가 발표 때 소리가 정말 좋아 졌다고 말해 주시는 분들의 진정성에 위안을 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다은이가 희로애락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피드백을 하고 있다, 그 분은 내가 다은이에게 이토록 모지락스럽게 피드백을 하는지 알고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20여년을 참고 모진 말 모진 매를 견디어 냈으니 이만큼이나 하는 것이지. 등등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 되면서. 맹렬이가 판소리 200년사에 이름이 올라간 이유는 소리를 잘 듣고 피드백을 잘해서가 아니라 송홍록 명창이 맹렬이의 피드백을 잘 받아 들여 연습을 많이 해서 명창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다은이가 명창이 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피드백을 받고, 그 이상으로 연습을 해야만 명창이 될 것이다. 귀 명창들의 칼날 같은 피드백을 기대하며 판소리 천일 야화를 월 1회 하면서, 다은이가 국창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쳐서 그만 두고 싶었던 피드백을 죽는 그 날까지 더욱 더 열심히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 대한 피드백은 절대로 하지 않고 피드백을 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배우고 싶다고 보존회와 스피치 연구소로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믿는 구석도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호흡에 소리를 얹어 보았으니 어느 순간에 터득하여 득음 한다면 그 때는 웃으면서 그 때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날을 기다리기로 작정하며 주름진 내 마음에 다림질을 한다.



 다은이는 15년에 걸쳐 발표한 다섯 바탕소리를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소리의 완성도를 높이고 남도 민요 발표를 위해 주말이면 서울로 레슨을 가며 <지구촌 우리 소리 합창단> 지도와 개인레슨, 학교 수업, 작곡, 다양한 공연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는 다은이가 중요무형문화재 그 종착역까지 달 릴 수 있는 힘을 갖춰 기차에 태워 놓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 피드백을 하며 맡은 일을 성심을 다하고 있다. 그리하여 판소리 300년사에 이다은 이름이 올라가고 송홍록 명창 옆에 맹렬이 이름이 올라 간 것처럼 내 이름 석 자도 올라가면 좋겠다.



글 김광심 (한국판소리보존회 익산지부 사무장)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75
호 판소리로 전하는 마음의 편지(12)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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