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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마당

[80호 소식지 인터뷰] 송근규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전기기술자가 시인이 되었을까?’ ‘시인이 전기기술자가 되었을까?’
송근규 회원을 처음 보는 사람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만큼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 여유 있는 말투와 포근한 음색은 처음 보는 사람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익숙함은 그의 왕성한 활동영역을 말해준다. 어렵사리 마련된 인터뷰에서 송근규 회원이 살아온 삶을 넌지시 엿본다.      
 
‘잘 하는 것도 많고 활동하는 분야도 다양해서 뭐라 호칭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시인? 전기기술자? 가수? 영상전문가? 드론전문가? 잘하시는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이전 직장에서 전기 관련 일을 했었기 때문에 전기기술자로 불러주세요. 호칭이 많다고 하셨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이런저런 직함 아닌 직함을 가지게 되었네요. 전에 아파트에서 전기 과장으로 7년 정도 근무를 하면서 전기안전관리책임을 맡아 했습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에 잘하는 것도 전기 고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최근 하던 일을 접어두고 또다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송근규 회원. 취미라고 하기엔 전문적이고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열정이 대단하다. “하시던 일을 그만 두고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들었는데요.”


 드론으로 항공 촬영하는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교육관에 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학교 후배가 전주 남부시장 2층 청년몰에서 천연화장품 공방을 하고 있는데 제품을 써보니 효과가 좋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도 해드리고 소개도 해주면서 판매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시어버터가 들어간 제품이라 피부의 트러블이나 보습효과에 뛰어납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참여연대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2002년도 쯤 희망연대를 먼저 알게 되었고 단체 활동을 하던 중, 익산에도 참여연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참여연대 밴드에 목포 신항과 진도 팽목항을 다녀온 사진과 이야기들이 있던데요.
네, 지금 세월호 사고가 3년이 지났어도 머릿속에는 아직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늘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직장 다니느라 시간이 잘 맞지 않았는데 이번에 시간이 나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진도에 들어가는데 가슴이 떨리면서 팽목항 도착 전까지 ‘아리랑’ 노래를 불렀습니다. 막상 도착하니 가슴이 뭉클했고 북받쳐 오르는 심정으로 영정사진 하나하나 눈 맞추며 분향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이 사회가 안전하고 좋은 나라가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팽목항을 가는 동안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떨리는 가슴을 달래고 영정사진 하나하나 눈 맞추며 분향을 했다는 송근규 회원. 세월호 사고 3년이 지난 지금 느슨해진 내 맘을 다시금 추수려본다.

 “요즘의 팽목항은 어떤가요?, 세월호 사고 이전에 갔던 목포항과 지금의 목포항, 어땠나요?”
제가 갔을 때는 비교적 한산했고 세월호가 목포 신항으로 옮겨진 뒤여서 사람들이 목포를 더 많이 찾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선체 내부를 수색하다 보니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목포는 대학교 때 가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냥 ‘항구구나‘ 이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차량에 노란 리본을 많이 부착하고 다니는 걸 보니 ‘세월호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 인터뷰 전에 뒷조사를 좀 해보니(^^) 결혼을 좀 일찍 하셨나봐요? 큰 아들이 대학생이고 둘째가 중학생으로 터울도 좀 있고요? 가족 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내와 대학교 1학년 큰아들 웅찬이, 중2 작은아들 예찬이 이렇게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아내는 대학교 4학년 때 친구 소개로 만났고 2년 3개월을 연애하다 97년도에 결혼을 했습니다. 친구들 중에서 결혼 순서로 보면  제가 중간 정도인 거 같아요.

큰애와 둘째가 다섯 살 터울인데, 큰아이를 낳고 둘째는 입양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나 고아원으로 가는 아이들이 많아 입양을 염두에 두게 되었는데 그 생각이 길어지다 보니 터울이 생겼고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나 몸으로 낳은 자식이나 똑같은 자식이다. 어느 한 쪽만 고집하지 말자‘ 이런 생각까지 가게 되고 그러다 둘째가 생기게 되었고 지금은 두 아이 모두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향은 익산이고 초중 고등학교까지 익산에서 졸업을 하였고 대학교는 전북대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군대는 강원도 화천으로 다녀왔고요. 그 이후로 계속 익산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가족 소개 부탁에 개인 신상이 모두 쏟아져나온다~ ㅎㅎ 궁금하던 한 가지, 공대 출신 & 시집 발간... “시집을 발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1년도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때 굉장히 어려웠는데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어서 이래저래 글을 한두 편씩 쓰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썼던 글들을 모아 보니 분량이 많아지고 책으로 낼 수 있겠다 싶었을 때 후배의 권유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시가 있나요?


아무래도 처음 썼던 “침묵의 소리”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짧은 순간에 쓰였지만 침묵이 주는 의미를 나름대로의 글로 잘 표현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이나 기술관련 취미가 어울릴 것 같은 송근규 회원의 젊었을 때는 모습은 어땠을까?’
대학 때 ‘견우직녀’라는 노래패 활동을 했습니다.

그 시대는 다 그랬듯이 사회를 생각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고민하던 마음을 노래에 담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노래패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견우직녀 노래패가 30주년을 맞아 모임을 했는데 지금껏 후배들이 잘 이끌어 주고 이어져왔다는 거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활동영역이 넓은 만큼 만나는 사람이나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혹시, 존경하는 분이 있나요?”


강원도 삼척 원덕 대안학교에 계시는 김종률 교장선생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분인데 제가 어려운 시기에 그 분의 글을 통해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이후에 삼척을 찾아가 뵈었는데 정말 말씀대로 사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자주 찾아뵙고 있습니다. 지금도 자주 연락을 하고 있고 교장선생님과 삼무곡 자연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얼마 전 대안학교에 대한 비리나 인권침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진정한 대안은 단순히 교육의 장소를 옮기는 것보다는 철학이 담겨지지 않으면 한낱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철학이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여러 단체에서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집안일은 좀 소홀하지 않을까?

송근규 회원의 아내분이 좀 서운해 할 거 같기도 하다. “아내분은 뭐라 하지 않으시나요?“
바깥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처음에는 아내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초창기에는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생각해서 함께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서 봉사단체 시민사회단체 영상모임 독서모임 운동모임 동문모임 등 지역 모임이 많아졌는데 일부러 했다기 보다는 틈나는 대로 함께 하면 좋겠다는 곳에서는 참여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아내가 싫어했지만 지금은 20년 정도 살다 보니까 이해도 해주고 또 한편으로는 좋은 활동과 모임이 있으면 같이 하고픈 마음에 권유도 해보았지만 쉽지가 않더라고요.^^ 아이들도 어릴 적에는 벽화활동 같은 봉사활동에 참여했었는데 커나가면서 나름대로의 생활들을 하다 보니 함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익산에서 태어나 줄곧 직장생활까지 익산에 대해 누고보다 잘 알고 있을 거 같은데요, 익산이 좋아지려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번에 촛불집회와 선거를 보면서 ‘한 사람의 지도자가 그 지역과 나라를 망치는 것도 순식간이고 일으키는 것도 순식간의 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고 선거에 참여하여 지도자를 잘 선출하면 지도자가 그만한 영향력을 끼쳐 사회적으로 잘 배출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익산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바라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회원활동에 잘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참여연대에서 강의와 인문학적인 교양강좌를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참여연대가 음으로 양으로 아니면 내적으로 외적으로 알차게 잘 했으면 하고 회원 분들과 상근자분들께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송근규 회원과 어울릴만한 단어들이 꿰맞춰 졌다. “시와 노래, 봉사와 시민활동, 새로운 시작과 만남”  다양한 영역에서 틈나는 대로 자신의 성장과 바른 사회를 위해서 꾸준히 활동하는 송근규 회원. 시인이나 전기기술자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은 옆집 ‘쌀집 아저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