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마당

트럼프와 북미회담.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트럼프와 북미회담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요즘 글쓰고 강연하기가 좀 부담스러워진다. 좋아하고 즐기며 벌어먹고 사는 일이기에 웬만하면 원고청탁과 강연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한반도 안팎의 정세가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급변하기 때문이다.
 
524일 밤 글을 쓰고 있는데 인천의 한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트럼프가 612일의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곧 여기저기 카톡방을 통해서도 그 뉴스가 확산되고 있었다. 혹시 가짜뉴스 아닐까하고 즉각 백악관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진짜였다.
 
마침 다음날 25일 저녁 임실에서의 강연주제가 북미관계였다. 난감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충격이나 분노 또는 실망인 듯하다. 나는 99%의 가능성도 실현되지 않을 수 있고 1%의 가능성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즐겨 써왔는데, 청와대에서 장담한 99.9%의 가능성조차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트럼프-문재인 정상회담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그리고 북한이 핵시험장을 폭파한 당일에 회담 취소 발표를 한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다. 나는 참 트럼프답다는 생각부터 떠올렸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술로 보는 것이다. 회담의 주도권을 갖거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지, 북미회담을 완전히 깨겠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회담이 곧 열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도 원하고 북한도 원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이라도 김정은 위원장과 통화하며 다시 중재에 나서지 않겠는가. 늦어도 727일 정전협정 65주년 기념일을 넘기진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와 이어진 북 김계관 부상이 대독한 담화발표 뉴스를 보고 있는 시민들 질문이 쏟아졌다.

 

트럼프 주위의 부통령이나 안보보좌관 등 강경파가 북한과의 협상을 원치 않아 트럼프가 회담을 취소한 게 아닌가? 미국은 국익을 우선시하는데 북한을 적으로 삼아야 남한과 일본에 무기를 팔아 더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지 않은가? 이란과 맺은 핵협정도 파기하는 터에 북한과 새로운 핵협정을 맺을 이유가 무엇인가? 북미회담이 무산되더라도 남북이 자주적으로 우리끼리 협력하면 되는 것 아닌가? 주한미군 철수나 남한의 분담금 증액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첫째,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구조나 과정에 국가안보위원회 (NSC)의 역할이 크다.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 중앙정보국장과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참여한다. 부처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있고, 강경파와 온건파 간에 대립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크고 결정적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대통령이 얘기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펜스 부통령이나 볼턴 보좌관이 뭐라고 하든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다는 뜻이다.
 
둘째, 미국뿐만 아니라 남북한을 포함해 어느 나라든 대외정책에서 국익을 중시하고 우선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외교의 제1목표가 바로 국익이다. 국익엔 여러 가지가 있다. 안보이익도 있고 경제이익도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도 있고 보이지 않은 이익도 있다. 북한을 적으로 삼아 남한과 일본에 무기를 팔아 얻을 수 있는 경제이익과 북한의 핵무기 폐기에 따른 안보이익을 비교해 큰 쪽을 택하지 않겠는가. 북한에 대한 투자를 통해 거둘 수 있는 경제이익 등도 고려할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국익보다 사익을 중시하는 측면도 강하다. 2년 전부터 불거져온 러시아 관련 의혹과 성추문, 11월 중간선거와 12월 노벨평화상 등을 염두에 두고 북미회담에 임할 것이라는 말이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임명된 뮬러 특검과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셋째, 이란과 북한은 크게 다르다.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했지만, 북한은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이란 주변엔 미국에 맞설 강대국이 없지만, 북한 주변엔 중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이 있다. 중동에선 미국을 움직이는 동맹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핵협정을 파기하도록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한반도에선 미국의 혈맹 남한이 북한과의 핵협상을 원하며 중재하는 것 등이 큰 차이다.
 
넷째, 자주도 중요하고 우리민족끼리도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을 끌어들여야 한다. 미국의 협조 없이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나 공조를 강화하자는 건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서 원하는 게 경제발전인데, 미국이 반대하면 유엔의 대북제재를 풀 수 없고,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남한이든 중국이든 경제지원이나 협력을 추진하기 어렵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조차 쉽지 않은 상황 아닌가. 미국이 직접 돈을 내지는 않더라도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바꿔야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IMF)을 통해 돈이 들어가고, 일본의 식민통치 보상이나 배상금이 들어가게 된다.
 
또한 미국을 앞세워야 남북화해와 협력에 부정적인 보수세력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다. 미국이 빠지면 극우언론과 수구정당을 비롯한 친미반북 세력이 남북관계 진전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겠는가.
 
다섯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면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요구해왔지만, 미국이 정전협정을 고수하며 평화협정을 거부해온 배경은 냉전 종식 이후 주한미군의 성격과 역할이 중국 견제와 봉쇄로 바뀐 데 있다. 참고로 나는 오래 전부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단계 방안을 제시해왔다. 1단계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요, 2단계는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평화협정과 국교정상화를 이루는 것이며, 3단계는 핵무기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바꾸는 것이다.


 
5월 28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한국이 환영하고 필요로 할 때만 주둔…철수 요구하면 떠날 것"이라고 말해 미국 내 향후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에 대한 논란을 다시 가져온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

 

 그런데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핵무기 폐기에 대한 대북 안전보장 조치로 종전선언, 평화협정, 국교정상화 등의 얘기만 나온다. 주한미군에 관한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하다. 북한과 미국이 아예 의제로 올리지 않는 것인지, 논의하면서도 군부의 반발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져도 주한미군 철수는커녕 감축도 안 된다는 분위기랄까. 아무튼 트럼프는 북한이 원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말하고, 김정은은 미국이 원하면 유지해도 좋다고 대꾸하며 주한미군 문제 때문에 회담을 결렬시킬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주한미군 유지비용에 관해 미국이 협상하자면 지금까지는 남한 국방부나 외교부 담당자들이 미리 인상 준비를 하고 협상에 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에서 얘기했듯, 냉전 종식 이후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유지하기 때문에 남한이 큰소리치며 협상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나 한미동맹이 약화하면 나라가 거덜나리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것도 안타깝다.
 
이 글을 쓰고 있는 528,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북한이 25일 내놓은 유화적 성명은 바람직했고, 남북한의 26일 판문점 정상회담은 환상적이었다. 물론 미국 군산복합체의 방해와 네오콘의 반발이 얼마나 극심해질지 모르고,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전술이 어떻게 바뀔지 짐작하기 어렵다. 아무튼 내가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글쓰고 강연하는 데 부담을 갖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즐겁고 더욱 신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와 통일을 진전시키고 있지 않은가.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pbp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