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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홍정훈 회원

 

우리 참여와 자치소식지 발행 역사상 초유의 일이 터졌다. 한 달 전부터 인터뷰 할 회원을 섭외 하고 회원에 맞는 질문을 추리고 연락을 시도하는데...

홍정훈 회원님 이시죠? 이번 소식지 회원 인터뷰 좀 하고 싶은데요?” “죄송해요, 소송 건 때문에 자료 준비하고 서울을 오가느라 시간이 없네요. 정말 죄송해요 시간 내기가 여간 쉽지 않네요...”

엄청난 활동량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홍정훈 회원의 성격을 알고 있는 우리는 두 번 생각 안했다. 서면(書面) 인터뷰다!

하는 일이 바빠서 만나는 것은 물론 통화하기도 쉽지 않은 홍정훈 회원.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다. 복지, 환경, 인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홍정훈 변호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물론 한 번에 끝내지 못했다. 바빠서...ㅎㅎ

 

 

먼저, 많이 바쁠텐데 익산참여연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익산참여연대는 대학 선배인 소상훈 운영위원님의 추천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2008년 광우병 사태, 한미 FTA와 관련하여 당시 참여연대의 활동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익산참여연대는 제가 전주에서 활동을 하다 고향인 익산으로 와 생활하게 되면서 처음 인연을 맺은 시민사회단체입니다.

 

본업인 변호사 업무 뿐 아니라 시민단체에서도 다양한 활동하고 있는 홍정훈 회원이 올해는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까지 맡게 됐다. 어떤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운영위원으로서 마음가짐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종전에도 시민사회단체의 운영위원을 맡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도 전주에 있는 전북평화와인권연대(대표, 문규현 신부, 송기춘 교수)의 운영위원과 전북대안신문 참소리(발행인 문규현 신부)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운영위원의 역할에 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위 단체들에서는 운영위원님들이 상당히 주도적으로 사안에 결합하고 운영방안을 모색하는 편입니다. 한편 다른 단체들의 경우 활동가의 활동을 보조하고 단체의 재정 등 운영에 관한 부분에 중점을 두기도 합니다. 즉 운영위원이 상근활동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비상근활동가와 같은 활동을 하느냐, 아니면 사단법인의 이사회와 같은 재정적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하느냐는 결국 단체의 그간의 활동방식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면서는 우리 지역의 사회적 문제, 행정의 문제 등에 적극적 자세로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활동가의 역량 발휘를 위한 회원사업과 활동가의 안정적 단체운영을 보조하는 고유의 운영위원의 역할이 잘 수행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기본이 되는 재정과 단체운영에 관한 부분에 힘쓰면서, 나아가서는 참여연대의 사회적 역할에 결합하여 힘을 실어드리는 역할을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90일 후면 지방선거다. 홍정훈 변호사가 생각하는 익산은 어떤 도시일지 궁금했다.

익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잘못된 도시계획과 무분별한 도시계획, 향후 발전방향이나 철학이 없는 도시계획이라 생각합니다. 도시의 발전에 대한 장·단기적 계획 없이 도시 구역이 지정되고 개발되다 보니 익산시의 구심점이 없고, 산만하며, 도시의 힘을 모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익산의 발전 방향 자체에 대한 고민이 모아지지 않은 점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익산이 과거 제조업 중심의 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면 필패일 것입니다. 오히려 가까운 혁신도시의 농수산대학, 농촌진흥청과 연계한 농식품 산업에 관심을 두면 좋겠고 이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과 관련한 산업과 연계하는 농식품 첨단산업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익산시가 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인프라 확장에만 몰두하지만 이와 같은 인프라확장 외에도 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연구소나 소규모대학 등을 육성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으로도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를 개발하고 이를 공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익산시에는 광장이 없습니다. 대규모 광장이 아니라하더라도 오픈된 공간에서 함께 나눌 문화를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생활 말고, 개인사 궁금한 게 많다.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가 되고 우수한 성적으로 변호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전북대 법대를 입학할 때는 인권변호사가 꿈이었습니다. 실제 군대를 갔다와서 신림동에 두달 간 있기도 했습니다. 집안 경제사정이 매우 어려워서, 우선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림동에 올라갔는데 정말 방법이 없었습니다. 밥을 굶으며 공부하다가 버티지 못하고 신림동에서 내려오면서 사법시험의 꿈을 접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한 달에 최소 150만 원은 필요하였습니다. 신림동 학원가에서 사법시험 합격자의 대부분이 나오는 구조에서 돈 없이 사법시험을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었지요.

 

이후 회사에 취업해 일을 하기도 하고, 보험설계사로 보험을 팔아보기도 하고, 학원 강사도 하면서, 꿈을 잃은 청년이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간을 7년 보냈습니다. 그러다 2008년 광우병사태 때 민변 변호사들이 인권지킴이단을 하면서 시민들을 보호하러 시위현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그 꿈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미 나이를 먹은 터라 막연히 꿈만 가지고 있었는데, 로스쿨이 시행되고 제가 2회 입학시험을 보고 로스쿨에 들어가게 되면서 지금 이렇게 인권변호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스쿨 변호사에 대한 편견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스쿨 변호사들 실력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미 법조계에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법원 주최 변론대회에서 전국 1위도 했습니다.

 

첫인상이 비범하다... 아내분은 어떻게 만났나? 가족 소개 좀 해주시라~

 

 

 

저는 20살 대학 신입생 때 같이 수업을 듣던 한 여학생에게 용감하게 연락처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그 여학생이 제 아내입니다. 대학교 1학년 그것도 3월이었고, 43일부터 사귀기 시작해 12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이십니다. “독헌놈”, “와 대단하다.” 그런데 저는 평생 함께 할 사람을 조금 일찍 만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분들과 크게 다른 점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기로 졸업하고, 변호사시험 2회에 합격해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에 있습니다. 로스쿨 1학년을 마치고 결혼을 해서, 로스쿨 3학년 때 제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구요. 저의 가족은 단출하게 저와 아내, 딸 세 식구입니다.

 

홍정훈 회원이 존경하는 분은 어떤 분일까 궁금하다.

 

 

제가 존경하는 분은 전북대 법전원의 송기춘 교수님입니다. 전주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시고, 상지대 공익이사,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회장 등을 역임하신 분입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도 하고 계십니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학자로서 명망이 있으시지만 그보다도, 항상 낮은 자세로 소수자와 인권의 사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끝없는 노력하는 진정한 인권운동가이시기 때문입니다.

 

외모를 봐서는 독서가 취미일 거 같은데... 잘 하는 거 있으세요?

저는 변호사 하면서 쉬질 못해서 취미생활이 특별히 없습니다. 그나마 좀 나은 것은 노래? 소상훈 운영위원과 전북대 민중노래연구회 산하에서 만났습니다. 노래하고 드럼치고 기타치고 뭐 이런 거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바라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얘기해 주세요.

참여연대가 거버넌스를 할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대안을 가진 단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세력화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회원 간 따뜻한 연대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회원들이 참여해 사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열린 단체가 되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