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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아파트 긴급 대피명령 발동" 그후 6년 동안의 삶! 조경환 회원

"우남아파트 긴급 대피명령 발동" 그후 6년 동안의 삶!

 

 

 

 

                                                                                                                                                 

                                                                                                                                                 조경환 회원

 

주민등록 상 주거지와 현재 살고 있는 거주지가 다른 삶을 살아 온지 어언 7,

탯줄을 묻었던 자리를 고수하며 그곳 웅포에서 줄곧 사업을 벌이다 새로운 삶을 설계하려 익산 시내로의 이사를 결정하고 7년 전 이때쯤 이사를 했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모현동소재 한동짜리 우남아파트를 소개받아 우선 아내와 손주가 새 주소지로 먼저 옮겨갔습니다.

처음엔 사업 뒷정리가 끝나는 대로 나의 전출도 곧 바로 실행될 줄 알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뤄지며 1년여를 끌던 중 난데없이 아파트에 긴급 대피명령이 떨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곳 우남아파트는 2002년에도 문제가 있어 건축물 구조 안전진단을 실시했었는데 결과는 D등급(미흡으로, 주요부위에 결함이 있어 긴급히 수리 및 보강조치를 취해야 하며 사용 금지조치 명령을 내릴 수 있다.)을 받았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온 이사였지만, 큰길에서 한블럭 떨어진데다 한동짜리여서 생각보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당시 내가 처해있던 불안정한 상황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씩 주민들끼리 편을 갈라 상대편을 사기꾼들 이라 욕하고 서로 고발 전을 감행하며 불신감 조장을 고조시키는 것 빼고는...)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5도에서 15도가 기울어 순식간에 붕괴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메스컴과 사태를 기획한 협잡꾼들의 부화뇌동은 가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 또한 이곳 아파트에 사는 것을 알고 있는 몇몇 지인들로부터 연일 안부를 걱정 해 주는 전화 때문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느라 그 곤혹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기가 난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붕괴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휘몰아친 그 경황 중에 103세대 중 60여 세대가 제대로 된 대비책도 없이 이사비용 100여만 원 만을 손에 쥔 채 황망히 떠나가야 했습니다. 이 와중에 더욱 슬펐던 건 아파트 정문 앞에 버젓이 "재건축 추진위원회"란 간판을 내걸고 싼값에 아파트를 쓸어 담을 기세로 매수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남기로 하고, 손주 먼저 아들집으로 전출 시켰습니다. 그나마 대피마저도 할 수 없어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분들과 함께 이 난관을 헤쳐 나가고자 다짐했었죠. 아이를 둔 젊은이들이 제일먼저 떠나고 대부분 의지할 곳 없는 고령의 여자분들 위주로 많이 남았습니다.

우선 근심걱정으로 지새우는 분들을 위해 본 건물에 대한 현실적으로 호의적 진단을 내려 안심시키는 일 이었습니다. 암반위에 골조가 튼실하게 서 있는데다 금간 곳 하나 없이 깨끗하며 기울었다는 것 또한 모두 거짓 이라는 설명과 함께, 일부 부실시공한 부분과 마감이 소홀 했던 곳을 보강 및 수리하지 못해서 부실하게 보일뿐이지 하루아침에 붕괴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D등급 받은 아파트가 수도 없이 많으며, 그동안 대피명령이 실행된 아파트는 총3곳 뿐 이라는 것과, 그 마저도 정밀 구조 안전진단을 받은 후 즉시 붕괴가 우려되는 E등급을 받은 곳에 한하며, D등급 대피 명령은 최초이기에 버티면서 살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일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휑하니 떠난 빈집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청소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녹슬고 빈 놀이터를 철거하고 그곳에 텃밭을 꾸몄으며 아파트부지로 남아있던 인근 자투리땅을 정비하여 경작을 희망하는 주민들에게 한 고랑씩 분양도 해 줬습니다. 과거 농사경험의 향수를 되살려내고 작물의 커가는 모습에 안위하며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영농기술도 전수는 당연지사고요. 파종과 방제는 제가 도맡아했으며, 가꾸는 일은 저마다의 솜씨를 발휘했기 때문에 수확기의 편차가 뚜렷해서 경쟁 또한 치열해 졌습니다.

그러기를 삼년 여, 아파트 붕괴 뉴스는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재건축 협잡세력들이 철수하면서 아파트에 서서히 웃음꽃이 피며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떠났던 이들이 한두 가구씩 되돌아올 즈음, 나의 손주도 우리와 함께 살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합치게 됐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장애가 생겼습니다. 대피명령이 발효 중이므로 우남아파트엔 전출은 가능하나 전입은 불가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동사무소 담당자의 조언을 받아 고현초등학교에 입학 할 수 있는 학군주소지로 임시 전입하여 가까스로 입학은 허락 되었습니다.

조부모의 돌봄 하에 입학한 아이의 교육환경은 그야말로 난관의 연속 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난제는 실 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다르다보니 교육관련해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제때 만들어주지 못해 쩔쩔 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매사를 편법의 상황을 돌파해야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비정상 속의 불이익이 난무하는 삶의 연속 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웃픈 현상도 발생 했답니다. 주소가 두 곳, 따로인 3인가족인 우리에게 지급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이 80만원이 아닌, 100만원이란 사실에 씁쓸한 웃음을 짓게 했습니다.(정부지원금 20만원을 더 타내기 위해 7년 전부터 한 가구 두 세대로 계획을 세워 뒀었단 예긴데...)

 

엊그제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던 손주가 6개월 만에 첫 등교를 했답니다.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과 4학년 급우들과의 조우로 들떠있던 손주의 손을 맞잡은 채 설레임을 안고 기꺼이 교문 앞 까지 동참 해 줬습니다.

 

그동안 조손가정 교육이나 다름없을 헨디켑을 극복하고자 손주의 학업도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학교에서 가져오는 손주 손에 들린 부재 통신물들은 한집 두세대의 불법을 용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날 손주를 생각해서 인내하며 이곳을 고수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난데없는 아내의 이사 제안에 손주가 별 거부감 없이 찬성하는 걸 봤습니다.

다음 지목 자는 바로 나, 결국 우리 셋은 우남아파트 생활에서의 할 몫을 다 했기에 7년간의 동거를 마감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것을 결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을 진즉 예견했는지 아내는 벌써 다른 아파트로의 입주 예정일에 맞춰 계약 준비에 바쁩니다.

10월 초 입주 한대나 뭐래나...

 

그동안 난마처럼 얽혀있던 우남아파트의 정상화를 위해 임형택 시의원 등 많은 분들이 앞장서서 해결하고자 노력도 했습니다만, 아직도 정상화는 요원한 상황입니다. 얼마 전부터 익산시 시민안전과 주관으로 건축물 정밀구조안전진단을 실시했다는데 또다시 18년 전에 받았던 D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대피명령으로 인해 초래됐던 불이익을 해소하고 사후 재산권 행사에 대한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구했지만, 주무부서 담당자들의 입에서는 아직도 대피명령의 정당성만을 강변하며 영혼 없는 앵무새의 지저귐만으로 왜곡된 상황을 모면하려 합니다.

 

특정인들의 이익을 위해 협잡으로 일으킨 잘못된 행정력의 폭거를 하루빨리 거두고 피울음으로 살아 내온 아파트 거주민들의 냉가슴에 하루빨리 온기를 불어넣는 청신호가 나타나길 간곡히 기원하며 우남아파트에서의 생활 7년을 마감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