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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두 학교 갈수 있어!” 전현주 회원

! 너두 학교 갈수 있어!”

 

 

 

전현주 회원

(전주 구도심 골목 풍경 그림그리기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신난 아줌마)

 

 

코로나로 많은 일들이 생기고 많은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아팠다. 매일 텔레비전에서 무섭고 끔찍한 소식만 들려왔다. 모든 모임과 행사는 금지되고 학교도 오랫동안 방학했다.

 

학생들은 초유의 여름개학을 경험했다. 5월에 개학한 모 학교에 ! 너두 학교 갈수 있어”, “어서와! 여름 개학은 처음이지!” 웃기면서 슬픈 플랑카드가 붙었다.

내 조카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외동인 조카는 긴 겨울방학동안 혼자 집에서 놀았다. 개학할 때 동복을 건너뛰고, 여름 교복을 입고 등교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 지인은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을 인터넷으로 만나느라 애썼다. 초등학교 1학년은 집중력이 짧다. 지인은 학생이 볼 수업 동영상을 재미있게 만드느라 고생했다. 폰과 컴퓨터 사용이 서툰 학생 때문에 학부모들도 고생했다.

 

코로나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제일 좋았던 것은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딸이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하면서 떨어져 지냈다. 딸은 대학도 충청도로 가서 따로 살았다. 나는 코로나 덕분에 강제 방학한 딸과 6개월을 함께 지냈다. 딸이 어릴 때 빼고는 커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적이 없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애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서 피곤하다고 투덜거렸다. 동네 아줌마들은 애들 밥 챙겨주고,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들어 했다. 애들이 집에만 있으니 늘어난 집안일로 분주했다. 거기에 학교 못 가 갑갑해하는 애들 달래느라 힘겨워 했다.

 

난 동네 아줌마들과 정반대다.

나는 딸과 평화롭게 잘 지냈다. 딸은 2년 전 이사 온 전주에 친구가 없다. 심각한 트리플 소심한 A집순이이다. 움직이는 걸 싫어해 외출도 안 했다. 혼자도 잘 노는 아웃사이더이다. 코로나로 전 국민 강제 외출 금지기간에도 불편함을 못 느꼈다.

 

우리나라 대부분 학생들처럼 딸도 낮에 자고 밤에 노는 올빼미 생활을 했다. 깨어있는 동안은 핸드폰만 했다. 나는 딸이 밤새 텔레비전을 보건 게임을 하건 상관하지 않았다. 밥을 먹건 안 먹건 신경 쓰지 않았다. 다 큰 성인이니 내가 잔소리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난 자칭 (coooooool)한 엄마. 물론 딸 입장도 들어봐야겠지만.......

 

애들이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이년동안 나 혼자 살았다. 혼자 밥 먹고, 사무실도 혼자 근무하고, 혼자 공연 보러 다니고, 하루 종일 말 할 사람이 없어 적적했다. 혼자사니 쓸쓸했는데, 집에 딸이 있으니 외롭지 않았다. 그렇다고 딸과 알콩달콩 대화를 하는 건 아니다. 난 책보고 딸은 폰 게임하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했다. 퇴근하면 딸이 내 얼굴을 안 쳐다봐도 나는 좋았다. 한 공간에 함께 있어 행복했다. 집에서 혼자 밥 먹어도 옆에 있어서 적적하지 않았다.

 

착한 딸은 밥도 하고 빨래도 했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는 딸이 매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줬다. 멕시코 요리, 베트남 요리 등 요즘 유행하는 음식을 딸 덕분에 잘 먹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요리에 소질이 있었다. 딸 말에 의하면 어릴 때 엄마가 해준 음식은 너무 맛없었어. 요리를 직접 할 수밖에 없었어.” 라고 한다. 딸이 요리 전문가로 성공하면 내 덕이다. 나는 딸이 어릴 때부터 다 계획이 있었다. 진짜다. 믿어주세요.

 

집안일을 잘하는 딸이 있어 난 편해서 살이 더 쪘다. 난 뚱뚱한 아줌마다. 딸은 먹고 누워 놀아도 살이 빠진다. 타고난 걸그룹 몸매다. 딸이 태어날 때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것 같다. 내 뚱보 유전자가 없다. 난 갈수록 살이 늘어나는데, 나잇살도 보태졌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한다. 비만이 심각해 의사 권고로 어쩔 수 없이 운동하는 시늉만 했다. 억지로 운동하는 척만 했는데,

                                                                                                                 

정부에서 운동 안 해도 되는 명분을 줬다. 착실하게 정부 권고대로 집에만 있었다. 집에서 먹고 놀다 보니 확찐자가 되었다. 딸이 내 뱃살을 꾹꾹 찌른다. 날마다 불어나는 내 살이 딸 눈에도 심각해 보이나보다. 운동하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성화에 못이겨 난 몇 번 아중 저수지를 산책했다. 내가 워낙 살살 걸어 다녀서 살은 안 빠졌다.

 

4월에 딸 학교에서 택배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펭수 빵과 과자, 문구용품이었다.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 입막음이었다. 살다보니 학교에서 군것질 거리를 보내 줬다. 코로나가 만든 진풍경이다. 학생들이 계속 요구한 덕인지 기숙사비 일부를 돌려준다고 한다.

 

대부분 대학들은 1학기를 휴학했다. 딸 학교 학생들도 개학 반대투표를 실시해서 개학이 늦춰졌다. 그러나 딸은 5월 말에 학교에 갔다. 코로나 때문에 개학이 불안했다. 딸 학과는 실습 과목이라 어쩔 수 없는 개학이었다. 딸은 마스크를 쓰고 요리 실습하느라 힘들어했다.

 

딸도 긴 겨울방학동안 나랑 잘 지냈다고 느낀 것 같다. 딸이 개학 후 주말마다 집에 오고 싶어 한다. 딸 학교와 집은 왕복 8시간 거리다. 먼 거리를 힘들어도 자주 집에 왔다간다. 코로나 전보다 내게 전화와 문자를 자주 한다. 내가 설거지 잘하는지, 청소는 하는지 점검한다. 내가 바빠서 설거지 못 했다고 변명을 하면 화를 낸다. 청소 했다는 내 거짓말에 속지 않고 증거사진을 요구한다. 내게 자주 잔소리를 날린다.

 

지난 주말, 딸에게 난 계란 후라이를 해줬다. 계란 후라이를 맛없게 하기는 힘들다. 나는 그 힘들 걸 해냈다. 난 대학교 식품영양 전공이다. 한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도 있다. 식품회사 품질관리 15년째 근무 중이다. 난 음식을 못하기 힘든 스펙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못한다. 딸은 변함없는 내 두툼한 뱃살과 형편없는 내 음식 솜씨를 놀렸다. 나를 보고 웃고 농담하는 딸보며, 코로나 덕분에 딸과 가까워 진 것에 감사한다.

 

딸은 개학한지 한 달 만에 여름방학을 한다. 나는 여름 방학 때 딸에게 여행을 가라고 했다. 딸은 목숨 걸고 여행 다니기 싫다고 거절한다. 난 딸에게 여행을 권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 시국이 안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