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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새해가 된지 벌써 십여일이 지났습니다. 새밑부터 날이 매섭게 추워서 몸을 움추렸더니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있습니다. 산골의 겨울답게 집뒤에 응달진 곳은 내린 눈이 얼어서 녹을 줄을 모르고 대나무 사이로 몰아치는 바람소리가 시린 겨울날을 흔듭니다.


제작년 겨울 우리집에 다녀가셨던 엄마는 해질녘이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로 동네가 잠길만큼 자욱해지는 풍경을 넋놓고 바라보곤 하셨습니다. 제가 그때 물었었죠. 무얼 보고있느냐고. 엄마는 “나 어릴때 같아서.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불을 때니까 여기처럼 연기가 가득했었거든. 그냥 그때 같아서.....”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엄마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오래토록 연기에 휩싸인 동네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요즘 저도 그때의 엄마처럼 연기 가득한 동네를 바라보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저 역시 그리운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지냈던 한해였는데 금새 작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작년에는 열심히하자라고 다짐했었는데 2012년엔 여유를 가지고 살피면서, 돌아보면서, 가려고 합니다. 회원님들도 새로운 계획들 다 세우셨지요. 꼭 이루시길......

불을 끄고 누우면 칠흑처럼 어두워지는 산골의 밤.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하얀 달빛이 신비하기 까지 합니다. 그런 밤. 신비한 달빛에 마음을 빼앗겨 아이들과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하는 무수한 별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은하수를 알려주고 내가 아는 별자리를 손으로 짚어줍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겨울밤처럼 하얗게 깊어가고 솔잎사이로 부는 바람은 대밭을 지나 대나무들을 깨우고 우리들의 잠도 깨워 놓은채 냉기를 한가득 안고 방안으로 성큼 들어옵니다. 산골의 겨울밤은 그렇게 모든 것을 깨워놓고 깊어 가고 있습니다.  

가을 수확기가 지나고 감사비료도 주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는 요즘입니다. 요즘 하는일은 사과나무 전지입니다. 그리고 설 준비. 올해는 설이 빨라서 요즘 마을 아주머니들은 설 준비를 하나둘 하고 계십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 맞은편에는 설을 앞두고 삼주일동안만 펑튀기일을 하시는 어르신이 살고계십니다. 어르신의 앞마당에 펑튀기 기계가 놓이면 이곳 사람들은 설이 얼마 안 남았구나 하고 짐작들을 하시죠. 그리고 쌀이며 옥수수, 떡을 튀깁니다. 그렇게 튀긴 쌀을 가지고 유과도 만들고 강정도 만듭니다. 저도 며칠전 오랜만에 집에서 만든 유과를 얻어먹었습니다. 물론 사먹는것과는 맛이 다르지요. 어르신들이 도시에서는 굳이 하지않아도 될 일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하시는 것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게으른 저는 내손으로 해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군밤을 열심히 해먹을 욕심으로 아는 분에게 밤을 좀 많이 샀습니다. 처음  몇 번은 신랑이 나서서 밤과 고구마를 구워주곤 했는데 날씨가 추워지니 꾀가 나는지 해주지 않고 밤이 김치냉장고안에 그대로 있네요. 호두도 처음엔 열심히 까먹더니 그대로 방치되어있고...그래도 땅콩은 맛있을때 다 볶아먹어서 다행이고 귤은 밤마다 열심히 까먹어서 썩은거 몇 개 빼고는 버린게 없습니다. 역시 겨울은 살찌기 좋은 계절입니다. 긴긴 겨울밤 우리식구들은 무얼 먹을지 늘 고민입니다.

며칠사이 떨어진 기온이 산골을 꽁꽁 얼리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누군가 와서 하얀 밀가루를 뿌린것처럼 서리가 하얗게 내려있습니다. 며칠전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이들이 아침에 과수원쪽으로 갔다가 얼어죽은 참새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말을 듣고 깜짝 놀랬습니다. 날이 그만큼 추운거겠죠. 다들 건강조심하시길.

참 그리고 저희 신랑이 동네 이장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좀 빠르다고 고사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그래서 신랑은 올해도 바쁘게 보낼것 같습니다.


글 정희진 (익산참여연대 회원)

* 참여와자치 57호-2011년-1월 소식지 정희진의 농촌이야기(11)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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