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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이야기 마당

북한 통치체제의 정상화



북한 통치체제의 정상화

 

 


  지난 5월 조선로동당 대회가 열렸다. 무려 36년만에 열리는 당 대회라 주목을 많이 받았다. 그에 대해 평가하거나 분석하는 각종 학술 발표회나 토론회가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내용이 별로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은 듯하다. 나는 이번 당 대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김정은의 직함 변경을 꼽고 싶다.‘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통해 그의 권력이 안정되고 북한의 통치제제가 정상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조선로동당이 전 사회를 이끌어가는‘1당 독재’국가다. 참고로, 남한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양한 계급계층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하고 대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정당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북한처럼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자 중심의 획일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하고 대변하기 위한 정당만 있으면 된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은 타도의 대상이기에 그들을 위한 정당은 있을 필요도 없고 생길 수도 없는 것이다. 1당 독재를 남한은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북한은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논리다.



  또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에서는 당이 국가보다 우위에 있으며 더 크고 많은 권력을 행사한다. 공산주의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전 세계 모든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자는 이론이기에, 국가는 잠정적인 조직으로 간주되고 당은 영원한 기구로 남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헌법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러한 논리와 배경으로 북한의 제1대 지도자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시며,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고 불렸다. 당 직함을 국가 직함보다 앞에 내세웠던 것이다. 참고로 남한에서는‘비서’가 높은 사람을 보좌하는 아랫사람이지만, 북한에서는 당을 이끌어가는 권력자다. 중국공산당 고위지도자들이‘서기 (書記)’라 불리고, 미국 장관들이‘비서 (secretary)’로 불리는 것과도 비교해보기 바란다.



  그런데 1994년 김일성이 죽자, 후계자 김정일은 1997년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되었다. 3년 동안 최고 통치자 자리가 채워지지 않자 당시 남한의 정보통이나 전문가들은 평양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거나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그렇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북한이 붕괴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북한은 나중에 3년 상을 치르느라고 그랬노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주석’이 아니라‘국방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남한의 대통령 같은‘주석’이라는 직함은 죽은 아버지 김일성에게 영원히 바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선군 (先軍) 정치를 내세웠다. 나라 안에서는 김일성이 죽고 총체적 경제난이 닥치는 가운데 밖에서는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너지고 미국이 봉쇄와 제재를 강화하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군대를 앞세운 것이다. 평상시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당이 국가를 이끌더라도, 비상시엔 투쟁정신이 더 투철하고 강력한 군대가 앞장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2011년 김정일이 죽은 뒤, 후계자 김정은은 2012년 당 에서는 ‘제1비서’가 되고 국가에서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당의 ‘총비서’라는 최고 직함과 국가의 최고 직책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죽은 아버지 김정일에게 영원히 바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죽은 할아버지를 국가의 ‘영원한 주석’으로 만들었고, 아들은 죽은 아버지를 당의‘영원한 총비서’로 만들었으니, 북한의 통치체제는 이토록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터에 지난 5월 당 대회를 통해 김정은이 조선로동당의‘제1비서’라는 어정쩡한 자리에서 벗어나 ‘당 위원장’이라는 명실상부한 최고 직위에 오른 것이다. 조선로동당 비서국을 폐지해버렸으니‘총비서’나‘제1비서’라는 직책도 사라졌고, 김정은이 누구의 ‘비서’냐는 무식한 질문이 나올 여지도 없어졌다. 아마 머지않아 국가 차원에서도 어정쩡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리를 털고 정상적인 최고 직위를 맡게 될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과 북한의 통치체제가 안정적이고 정상적으로 자리 잡아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고 곧 붕괴될 것이라며 대화를 거부하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이 참 딱하다. 아프리카까지 찾아다니며 북한을 제재하며 봉쇄하려고 애쓰는데,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일본도 북한과 대화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터라, 남한이 오히려 고립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글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익산참여연대 고문)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75
호 평화통일이야기(2)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