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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회원을 소개합니다.

 

 



[회원소개]  김명인 회원

 


2015년 5월 저녁 어느날 김명인 회원님을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회원님이 운영하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에 들어서는 순간 처음 만나는 분인데도 왠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대해 주셨다.  김명인 회원님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CEO다.



안녕하세요. 카페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이시네요.^^

네~~ ^^ 저의 꿈이었어요. 어찌 하다 보니 조금 시간이 앞당겨졌어요. 빠르긴 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참 좋습니다.^^ 



그럼 이 일을 처음에 시작한 건 아니라는 말씀인데요.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저는 고향이 서울이에요. 서울에서 태어나서 인천에서 학교를 마쳤어요. 당시 숙모(김광심 회원)가 학원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몇 년 만 도와달라고 해서 익산에 내려오게 되었어요. 그게 연이 되어서 17년 동안 학원을 운영했어요. 학원을 운영하면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지금 하고 계신일이 학원 운영과는 다른 상반된 사업을 진행하고 계신데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는지?

카페 운영하는 것은 저의 로망이었어요. 이렇게 빨리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거든요. 원래 계획은 나이 들어서 조용한 카페를 운영을 하고 싶었는데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것뿐이지요. 카페를 운영하다보니 좋은 점은 학원 할 때 보다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있어요. 자유로운 시간도 많고, 사람도 많이 만나서 좋아요. 처음 시작할때는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저는 어떤 일이든 결정 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는답니다.^^ 결단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럼 지금 현재 함께 사는 곳과 가족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익산 황등에서 살고 있어요. 시댁이 황등 이거든요. 시댁식구를 모시지는 않지만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어요. 함께 사는 가족은 남편과 고1, 초등1학년 딸 둘, 그리고 저희 친정엄마와 함께 다복하게 살고 있어요. 남편은 현재 새로운 일을 계획하면서 일을 준비 중에 있구요. 친정엄마가 막내를 많이 돌봐주고 있답니다. 아빠는 제가 학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어요.
시어머니는 결혼 직전에 암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남편은 6남매 중 셋째로 형제들의 우애가 엄청 좋아요. 항상 같이하죠. 아버님이 계신데 며느리들을 참 예뻐해 주시고 며느리 입장에서 많이 생각해주고 뜻을 따라주시는 참 좋으신 분이세요. 마음이 정말로 넓고 따듯한 분이시거든요. 동서들간의 사이도 참 좋아요. 서로를 많이 이해해 주는 이해심이 많은 분들이랍니다. 그래서 시댁분들이 참 좋아요.



그럼 결혼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어요?

숙모 학원을 도와줄 때였어요. 학원에 다니면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친정엄마를 비롯해서 주위의 반대가 심했어요. 시댁이 잘사는 것도 아니고 남편과 나이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반대가 정말 심했어요. 그런데 신랑이 엄마를 설득시키기 위해 무던히 많은 노력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지요. 그런데 지금 친정엄마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사위가 최고 좋다고, 제일 이쁘다나요. ㅎㅎ 엄마한테 잘하거든요.
반대가 엄청 심할 때 저도 헤어질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내다보니 정말로 성실하고 어른들한테 너무 잘하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 사람과 결혼하면 우리 엄마한테 정말 잘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어렸을 적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저는 딸 넷인 집안에서 엄한 아빠 밑에서 자랐어요. 아빠는 딸들에게 남자들이 하는 운동을 많이 시켰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때‘남자도 아닌 여자인 내가 군대를 가야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이 있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어렸을 때는 그냥 평범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특별한 삶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때까지 아빠가 중국집을 운영하셨는데 그때까지는 부족함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중국집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많이 놀렸지만요.^^ 그래도 좋았어요. 그 이후 아빠가 직업을 다른 직종으로 바꾸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조금은 어려운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엄마가 많이 고생을 하셨지만 저희 네 딸들이 엄마의 일을 많이 도와주면서 뭐 그냥 당연한 생활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특별하다거나 힘들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워낙에 성격이 무던해서 그랬나 봐요.^^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네 자매의 우애가 남다를 것 같아요.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려움을 함께 해서 그런지 서로 많이 의지하고 어떤 일을 하던지 잘 뭉쳐요. 여자만 넷이다 보니 우애는 정말로 좋은 같아요. 항상 어떤 일을 하던 함께 하거든요. 저는 맏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생활을 하다 보니 맏딸 역할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라고나 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마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좀 성숙했죠.^^



지금까지 살면서 힘들었던 시절은 없으셨어요?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어요.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결혼 후에 2-3년 동안  힘든 일이 있었어요. 힘든 일을 겪으면서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큰아이를 많이 돌보지 못했어요. 너무 믿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랬는지 그 부분이 큰아이한테 정말로 미안하기도 했지요(지금은 큰애하고 잘 지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답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아픔 뒤에 좋은 일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때 막내가 태어났고 막내가 아픔을 낳게 하더라구요. 그리고 막내로 인해서 집안의 분위기가 확 바뀌고 집안에 활력이 돌더라구요. 지금도 그렇지만 막내는 우리 집 애교덩어리에요.^^ 사람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참여연대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잘 몰랐어요. 이야기를 듣고 설명을 들으면서 참여연대 활동 중에 산악회 활동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산악회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산을 잘 타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보통 산악회는 어른 중심이잖아요. 그런데 참여연대는 아이들도 함께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 꼭 가고 싶었어요(엄마라서 그런지 나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체력적으로 바쳐 주지 않으니 쉽지가 않더라구요. 정말 꼭 한번은 따라가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이 사업이 최종 꿈이었기 때문에 이 일에 집중을 하고 싶어요. 이후에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계획이 없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계획이고 꿈인 것 같아요. 더 큰 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하튼 지금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로써는 지켜 나가야 할 임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면서 함께 활동도 하고 싶거든요. 저는 성격상 사람을 만나는 것을 참 좋아해요. 사람이 살면서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이 많잖아요.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하듯이 말이에요. 참여연대 활동은 직접적으로 많은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꼭 같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직접적으로 앞에서 진두지휘는 못하지만 뒤에서 많이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참여연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참여연대 하면 딱딱하고 제도적인 문제를 많이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속속들이 들여다보니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단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행사를 많이 진행 하보면 이런 편견이 없어지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서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제공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명인 회원님은 쇼핑하는 것 좋아하고 맛있는 거 먹는 거 좋아하고, 만드는 거 좋아하는 분이시다. 또한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며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훌륭한 엄마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시는 분이셨다.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그 평범함 속에 많은 이야기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듯이 오늘의 인터뷰는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는 듯 했다. 

처음엔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척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던 회원님은 인터뷰하는 내내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해온 본인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부분을 계속이야기 하셨는데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본인의 이야기도 서스름 없이 잘해주셨다. 아픈 만큼 성숙하듯이 회원님은 정말로 나의 아픔을 승화시킬 줄 아는 분이셨다. 참 감사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산악반 활동을 꼭 해보고 싶다고하셨고 같이 산에 오르기로 약속을 했다.^^



글 류귀윤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 이 글은 참여와자치 소식지 71호 회원과의 만남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