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년 농사를 준비합니다
글 이석근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오전에 이장아저씨가 오셔서 내년에 쓸 나락 종자를 신청하라고 하십니다. 내년에 공급되는 종자는 채종포 나락, 수박이 피해가 많아서 각 동네마다 배정되는 양이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수확기에 잦은 비로 인해서 나락이 쓰러지지도 않았는데 서있는 상태에서 싹이 나와 내년 종자로 쓸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단 내년도 종자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배정된 양대로 신청하고 추가로 더 나오면 꼭 해달라고 부탁해놨습니다. 저도 올해 나락을 벨 때 궂은 날씨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들 논은 기계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하루면 다 벨 것을 이틀 삼일에 걸쳐 나락을 베고 덜 말라서 기계가 빠질 것 같은 곳은 손으로 베었습니다. 하우스 나락 벨 때는 아예 트랙터를 가져다놓고 빠지면 잡아당기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한나절이면 벨 것을 하루 종일 작업을 했습니다.
수확기 가을 날씨가 좋지 않아서 지금 하우스 고랑도 삽으로 파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아 논이 잘 마르면 하우스 치는 것과 동시에 관리기로 작업을 하면 되는데 지금은 질어서 관리기가 나가질 못해 일일이 삽질을 하고 있습니다.
흙도 잘 떨어지지 않고 질퍽거려 장화에 달라붙어 작업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잘 파면 하루에 한골 파는데 그마저도 요즘은 다른 일이 바빠서 쉽지 않습니다. 김장도 했고 메주콩, 서리태도 털어서 선별도 했고 또 시국이 시국인지라 이주 한번 씩 서울에 집회도 참여하느라 아직도 파야 될 고랑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빨리하고 거름 넣고 로터리 작업을 해야 됩니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계산해 줄 것들을 빨리 해줘야겠습니다. 농협 수매대금과 공공비축미 수매 금이 들어 왔고 엊그제 논 고정 직불 금이 들어왔습니다. 이 돈으로 나락 벤 것, 말린 것도 주고, 논 선자 값도 줘야 되고, 비닐 값, 거름 값도 줘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통장에 돈이 얼마 남지 않습니다. 일 년 농사 허망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다시 종자를 신청하고 내년 수박농사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질 희망을 바라면서요.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77호 농촌이야기(17)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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