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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이야기 마당

이영훈의 세상읽기 "그 해 여름"


그 해 여름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지도위원


들판이 벌겋게 타고 작물이 바짝 마르면서 농부들의 속도 타들어간다. 마른 장마란다. 2년 전에는 54일 넘게 비가 내려 섬진강이 넘치고 큰 물난리를 겪었는데...
이젠 폭염에 맞서야 하는 시간이다. 태풍이 지나가는 때까지 약 한 달간, 땡볕과 열대야를 견뎌야 한다. 그렇게 여름은 예전보다 좀 더 길고 강하게 다가온다.


<섭씨 45도를 웃도는 열기에 휩싸인 유럽은 물론, 남극과 빙하가 녹고 곳곳에 산불이 끊이질 않는다. 그야말로 재난적 상황의 기후위기가 갈수록 더 심해지리라는 우울한 전망에 비추어보면 그냥 견뎌서 될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무언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산행 때 물병을 가지고 다니며 일회용 생수와 결별한 지 몇 년쯤 되나보다.>


왁자지껄하니 소란스런 강당에 막 식사를 마친 오십 여명이 모였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각양각색이지만 다들 연대 식구들이다. 지리산 산내 뱀사골 덕동분교에 여름 수련회를 온 것이다. 벌써 여러 해를 다녀갔으니 제법 익숙한 풍경이다.
악기와 노래, 춤 등 장기자랑을 선보이고 상품도 푸짐하니 즐거운 시간이다. 특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다. 밤이 깊어가면서 모닥불 주위로 모여 차례차례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시간이 자못 진지하다. 손에 촛불까지 들었으니 분위기가 그럴 듯하다.
이어지는 두런두런 담소는 새벽녘까지 이어진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의 그 찬란함은 아직도 새롭다.
다음날 아침은 체육대회다. 집단 닭싸움부터 발야구까지 편을 나눠 진행하는 운동시간이다. 백미는 달리기다. 계주달리기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참여하는데 웃음과 재미가 최고다. 달궈진 몸은 계곡 물놀이로 식히면서 1박2일의 굵직한 시간이 추억으로 남는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익산참여연대의 여름수련회 풍경이다. 해마다 여름수련회를 정기적으로 다녔다. 뱀사골, 장수휴양림 등이 대표적이다. 운주계곡 물놀이는 동아리도 수시로 다녔던 장소다. 갈숲산악회는 식량과 텐트를 짊어지고 지리산을 넘나들었다. 그때 서너 살의 아이들이 훌쩍 자라 청년이 되었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린다. 그야말로 퍼 붓 듯이 쏟아진다. 다들 퇴근한 시간이라 아무도 없을 테니 더 걱정이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 어쩔까 하다 집을 나선다. 발걸음을 서둘러 사무실에 들어서니 벌써 두 사람이나 나와 있다. 방금 왔다면서 가볍게 인사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사무실과 풍물방 천장을 살핀다. 벌써 바닥에 홍건이 물이 찬 곳도 있다. 곳곳에서 비가 새니 빨리 양동이를 받쳐야한다. 악기가 젖지 않도록 풍물방은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연례행사처럼 겪었던 일이다. 물론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빨래 널 듯이 햇볕에 말려야 한다. 


<사무실은 단지 일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잇고 모으고 소통하며 사업을 만들고 풀어내는 곳이다. 그만큼 소중하고 애틋했던 공간이다. 회원은 물론이고 상근하는 활동가들의 수고가 어느 때보다 빛나던 시절이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중반으로 지금의 사무실 직전의 모습이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 조짐이다. 3년째를 보내고 있는데 다들 힘든 상황이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 등이 함께 견뎌야 하는 현실이다.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기에 그 우려가 크다. 재난과 위기상황은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한다. 살피고 함께 견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무덥고 어려운 여름을 나고 있다. 힘들지만 쉬어야 할 때 잘 쉬어야 한다.
사람은 두 가지를 채워야 살아간다. 하나는 자연과의 교감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간의 소통이다. 둘 다 필요하고 잘 채워야 삶의 만족도가 높다. 부족할수록 힘들고 아프고 병이 난다. 가까운 휴양림이나 산 둘레길에서 숲과 나무, 바위와 풀벌레 등을 보며 자연이 내주는 생명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땀이 나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고 계곡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는 것도 좋다.
혼자 가는 것도 좋고 함께 가는 것도 좋다. 둘 다 각각의 재미와 의미가 있다. 내 몸과 마음에 쌓인 찌꺼기를 내 놓고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생명과 생명의 순환의 시간이 활력이 된다. 그렇게 이 여름도 무난히 건너가기를 바란다.


이번 글은 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슈와 쟁점으로 보면 경찰국 문제와 대우조선파업이 떠올랐는데 막상 소재로 잡고 쓰려하니 마음이 무거웠지요. 내용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감성도 작용한 탓입니다. 
그래서 가벼운 느낌으로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20년 넘게 익산참여연대와 함께 지낸 여름을 들춰보았는데 여러분은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가로세로 1미터의 좁은 철망 안에 몸을 쑤셔 넣고 한 달 가까이 견뎌야하는 파업을 생각하니 몸과 맘이 저려옵니다. 얼마나 절실하고 힘들었으면 저렇게까지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하는지 감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머리로 하는 공감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따라가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희망버스는 그 시작일지 모르겠습니다. 노동과 자본의 차별은 물론 노동과 노동이 차별받고 작은 몸부림마저 법과 원칙을 들이대며 경찰특공대 진압까지 고려했다는 언론보도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이 순간에도 힘쓰는 이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