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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이야기 마당

‘인생이 그림 같다’ 를 읽고서

‘인생이 그림 같다’ 를 읽고서


 그림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붓과 물감 쥐어보고 그림 한 편 그려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하다못해 크레용이나 색연필이라도 붙들고 뭐라도 그렸을 어린 시절이 누구에게나 추억처럼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일상과 생각에서 그림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사라진 것을 의식할 새도 없이... 하지만 그림은 주변의 건물과 책속에 스며들고, 그릇과 악세사리, 식당의 액자로도 있고, 또 옷에도 있다. 생활 속으로 들어와 일상에 녹아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제대로 된 그림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게 안내서로 만난 것이 손철주 작의 ‘인생이 그림 같다.’는 책이다. 그림이나 예술관련 책들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어려움이거나 나와는 먼 다른 것이다. 많은 책을 보지만 손에 잡히지 않은 이유다. 그러다 제대로 만난 느낌이다. 제목만큼이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그림을 통해 선인들의 지혜와 생각을 읽고 풍속과 문화가 어우러진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생각은 어느덧 성찰로 나아간다. 그림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삶을 돌아본다. 그림에 대한 이해를 더하게 된 것은 그저 덤이다. 오히려 그림을 통해 삶을 반추하게 된 것이 더 큰 성과다.

 소설‘남한산성’의 김훈과 절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필체가 비슷해 보인다. 둘 다 기자출신이라 그럴까. 이론적이지 않고 술술 기사처럼 다가온다. 독특한 것은 서술 내내 정반합의 변증법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것이 만든 확실”이라거나 “겉과 속” 등 많은 부분에서 대비되고 모순되는 두 개념을 통해 결코 다름으로 끝나지 않고 풍성한 하나로 나아간다.

책을 덮고 보니 그럴듯한 이론하나 덧붙인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림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 느낌이다. 이제는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제대로 된 그림이라니? 이름난 화가의 그림이 아니다. 감흥과 울림을 주는 그림말이다.
 들여다 볼 수 록 눈을 뗄 수 없고, 처음에는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이내 사라지고, 주변은 의식되지도 않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어느덧 그림과 내가 일체가 되는 순간의 몰입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제대로 그림을 감상한 것이다.

 한마디로 임자를 만난 것이다. 모든 그림을 그렇게 볼 수도 없고 아무 때나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림속의 이야기와 나의 삶이, 감성이 같은 주파수에서 만나 가슴 설레는 떨림이 되고 메아리치는 울림이 되는 벅찬 순간은 짧지만 긴 여운의 환희다.

행운이었던지 그런 적이 있었다. 이태 전 송만규 화백의 전시회에서 만난 수묵화 ‘자작나무’는 발걸음을 잡는 것은 물론 다섯 번이나 나를 불러 세우는 것도 모자라 전시회를 떠나는 발걸음마저 돌려세워 붙들었던 적이 있다.

그림뿐이랴. 예술이 다 그렇지 않던가.

한번은 강릉 ‘소리박물관’을 찾았을 때 다 둘러보고 나오는 마지막 순서에서 들려준 음악에 매료되어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떠나오는 차속에서 전화를 걸어 그 곡명이 무엇인지 물었던 기억이 있다. 벌써 몇 년째 듣고 있는데 감동은 끝나질 않으니 이 또한 나와 통한 무엇이 있나 보다.

 2005년에 초판이었는데 최근에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로 개정판을 내었으니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