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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이야기 마당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과 일본 시민사회의 대응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과 일본 시민사회의 대응

                                              
  익산참여연대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 객원교수로 와 있는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박맹수입니다. 저는 요즘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1년이 되는 3월 11일을 앞두고 일고 있는 일본 시민사회의 다양한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여기저기 관련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2월 14일 오후에도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생협)>의 ‘탈원전(脫原電; 한국에서는 탈원전 대신 탈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 특별위원회’에 참석하고 밤늦게 돌아왔으며, 매주 1회 ‘탈원전 특별위원회’ 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있는 교토 이외에도 ‘탈원전’을 향한 시민사회의 대응이 대단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다가오는 3월 11일을 기해 ‘탈원전’ 선언을 위한 1천 만 서명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도쿄(東京)에서는 원전에 대한 찬반(贊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현하기 위해, 그 청원에 필요한 30만 명의 서명을 모아 2월 말경에 도쿄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으로, 머지않아 일본에서는 ‘탈원전’ 사회를 향한 국민투표가 성사될 전망입니다.

  이렇듯 ‘탈원전’을 향한 일본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대단히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2월 12-3일을 전후하여 후쿠시마 제 1원전의 2호기 온도가 급상승했다는 소식은 신문 보도 등을 통해 모두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2호기 온도 상승은 작년 12월 16일 “사고 원전의  냉온정지(冷溫停止) 상태가 안정 단계에 들어갔으므로 원전사고는 수습됐다”고 선언한(『아사히신문』2011년 12월 17일 1면 톱기사 <首相, 원전사고는 수습> 참조) 일본 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지금도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는 시간당 몇 천만 베크렐 이상의 방사능 물질이 끊임없이 방출되어 수많은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피폭(被曝)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상황은 사고원전에 대한 최종적인 안전 조치가 완료되기까지 앞으로 30년에서 50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사고원전에서는 지금 하루 7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피폭을 무릅쓰고 사고수습에 임하고는 있으나, 이들에게 허용된 피폭 량이 무한대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사고현장에서 철수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향후 30년에서 50년이 걸리는 사고 수습 과정에서 숙련된 원전 노동자들이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고재발의 가능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의 오염물질(일본어로 ‘가레키’라고 부름) 제거 문제도 대단히 심각합니다. 왜냐면, 방사능에 오염 물질을 이동시키게 되면 또 다른 지역을 다시 오염시키므로, 수거한 방사능 오염 물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지자체 간 갈등, 주민 간의 갈등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방사능은 이렇게 공동체마저 산산조각 내버리는데도 일등공신입니다.

  제가 현재 머물고 있는 교토 인근에는 일본 서부 지역 전기 공급을 관장하는 칸사이전력(關西電力) 및 일본원전(日本原電) 산하에 모두 14기의 원전이 있습니다. 쓰루가(敦賀)에 2기, 비하마(美浜)에 3기, 오오이(大飯)에 4기, 다카하마(高浜)에 4기, 고속증식로 몬쥬(文殊)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 원전 가운데 13기는 이미 정기검사 또는 사고 때문에 가동 중지 상태이며, 2월 20일이면 현재 유일하게 가동 중인 다카하마(高浜) 3호기마저 정기검사를 위해 가동 중지에 들어감으로써, 칸사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원전 14기가 모두 가동을 멈추게 됩니다. 3월 중순에는 도쿄 지역의 도쿄전력(東京電力) 산하 원전도 모두 멈춥니다. 즉, 3월 말경이면 일본 내 모든 원전이 멈추는 ‘상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이‘상상하지 못했던’ 사태를 앞두고 일본 내 원전 추진론자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2월 16일자 『아사히신문』 1면 톱기사 <再嫁動 說得에 必死적인 關電> 참조) 그들은 멈춘 원전의 재가동을 위해 사생결단의 태세로 온갖 공작(工作)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예측으로는 재가동 여론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정전사태마저 조작할 지도 모른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원전이 모두 가동 중지되면 일본 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경제논리를 내세워 시민들에게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한편 ‘탈원전’을 향한 시민사회 진영에 대해 여론 조작, 협박, 회유, 돈을 통한 매수 등의 방법을 총동원하여 가동 중단된 원전의 재가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탈원전(脫原電, 또는 反原電) 진영의 대응은 원전 추진론자들의 ‘필사적’ 노력에 비해 조금 느슨하고 속도가 더딘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 재가동을 멈추게 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응 논리와 대응 방법 모색을 위해 예전에 보기 드문 열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의 탈원전 운동에서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던 젊은 세대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데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일본에서는 이들 젊은 세대를 일러 ‘겐파츠데뷰 세대’ 즉 ‘원전반대 데모세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기존의 탈원전 시민단체들도 종전의 지역 중심의 제한된 네트워크에서 탈피하여 광역(廣域) 네트워크를 형성한 가운데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원전은 생명의 세계와 공존이 불가능한” 지극히 반생명적(反生命的), 즉 생명 파괴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그 반생명적인 원전에 의존하는 ‘편리한’ 삶의 방식에 우리들은 너무나 익숙해 져 있습니다. 진정으로 반생명적 원전을 없애고 뭇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생명의 세상을 활짝 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자발적인 성찰에 기초하여 생명 파괴적인 ‘편리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실천을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지속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전개해가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조금 불편하더라도 가까운 거리는 걷는다거나 개인 차원이건 공동체 차원이건 간에 다양한 절전(節電) 방법을 찾아내서 실천하는 것 등 바로 그것이 바로 원전을 없애고 생명을 살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을 며칠 앞두고 있는 일본 시민사회는 지금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 파괴적인 기존의 ‘편리한’ 삶의 방식의 개선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탈원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준비해 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012년 3월 11일은 바로 그 치열한 토론과 노력의 결과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는 날이 되리라 믿습니다.

(2012년 2월 18일)   
 

글 : 박맹수 회원(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 박맹수(朴孟洙)
  현재 일본 교토대학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공생인간학전공 객원교수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한살림 모심과 살림연구소 이사장
  주요저서 <<개벽의 꿈-동학농민혁명과 제국일본>>(모시는사람들, 2011)
          <<한글 동경대전>>(지만지, 2009)
          <<원불교학워크북>>(원광대출판국,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