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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의 십년감수

 

 

 

재규의 십년감수

 

 

저에게는 남편과 아들 둘이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한숨 짓고 눈물 날 때도 있지만, 그들이 있어 웃을 수도 있고 행복과 감사를 배우고 삶의 참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지요.


저는 어릴적부터 일기를 꾸준히 써 오고 있는데 지난 일기를 읽다보니 미소 지어지는 글이 있어 다시 써 봅니다.


일기의 제목은 [재규의 십년감수]입니다. 재규는 저의 둘째 아들 이름이고, 재규가 아빠에게 매를 맞을 뻔 했다가 맞지 않게 된 일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다음날 저에게 “엄마, 나 어제 아빠한테 맞을 뻔 했는데 안 맞아서 십년감수 했어.”하더군요. 그래서, 일기의 제목을 재규의 십년감수라고 정했습니다.^o^

 

  [재규의 십년감수]              20  년    월   일(토)

 

  준규,재규가 아빠가 빨리 씻고 오라고 한 말씀을 어기고 장난치다(준규는 비누거품 놀이하고, 재규는 물틀어 놓고) 아빠의 주의를 들었다. 그래도, 장난치니까 준규 아빠가 잠깐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에 나가면서 “니네 빨리 씻고 나와. 안 그럼, 너희 5대씩 회초리 맞을꺼야. 금방 들어올거니까 알아서들 해!”하고 말했다.

매 맞는다는 말에 잽싸게 씻고나온 재규는 나에게 다가와 매 맞기 싫다고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재규에게 “빨리 머리 말리고 자. 그럼, 아빠가 자는 사람 깨워서 때리지는 않으셔.”하고 말해 줬더니, 재규가 “아니야. 아빠  금방 들어오신다고 했어.” 하며 걱정을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얼른 재규 머리 말려서 재우려고 했는데 준규아빠가 밖에서 담배를 다 피우고 들어왔다.

에구, 불쌍한 재규......
 
  준규아빠는 안 맞으려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 재규를 불러냈고, 두 아들에게 등을 마주하고 뒤돌아 서라고 했다. 그러더니, 준규 먼저 때려주겠다고 하면서 회초리로 방바닥만 쳤다. ‘오늘은 매 맞는 날이구나‘ 하고 체념하고 있던 준규는 아빠가 때리는 시늉만 하자 ‘키득키득’ 숨 죽여 웃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상황을 알리 없는 재규는 잔뜩 겁에 질려 서럽게 울먹였다. 준규 아빠가 이번에는 재규 차례라며 또 방바닥을 때리자 그제서야 아빠가 진짜로 때리는 게 아니란 걸 알았는지 안심하는 눈치였지만, 많이 긴장하고 놀란 탓인지 나에게 달려와 크게 흐느껴 울었다.


준규아빠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다음에 또 이러면 그땐 진짜 종아리 맞을거야. 가서 자.!” 하고 말했다. 준규, 재규는 “아빠, 죄송해요.”하면서 아빠를 꼭 안아주고 자러 들어갔다.

 

  이번 일을 통해 준규. 재규도 아빠에 대해 느낀 게 있었겠지만, 나도 준규아빠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나 같았으면 화나는대로 큰소리도 지르고 짜증도 많이냈을텐데 준규아빠는 인내하고 아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 모습이 고맙고 감사했다. 준규아빠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것이 부모로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앞으론 애들한테 불같이 화내지 말아야지......

 

앞으로 애들 대할 때 여유와 인내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같이 직장생활 하는데도 집안일 안 도와 주고 나만 다 시키고, 아이들 공부며 하는 일에도 관심 없다며 원망도 참 많이 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글 오남희 (익산참여연대 회원)

 

 * 참여와자치 65호 회원글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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