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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요람기





나의 요람기



 기차도 전기도 있었다. 라디오도 영화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다. 화려한 도시도 아니고 아주 깡그리 촌도 아니고 반은 농촌 나머지 반은 도시인 동네에서도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봄이면 들로 강으로 개구리나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고 여름이면 조무래기 내 키의 두 배는 됨직한 냇가에서 열심히 개헤엄을 쳤다. 가을이면 타작 끝난 논두렁 높게 쌓아올린 짚더미에서 뒹굴고 겨울이면 불장난과 썰매타기에 하루해가 어찌 가는지 알 리 없었다.



 한반에 50여 명씩 6학급 6학년으로 구성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는 골목청소, 비상연락, 학교화단관리 등을 각 부락별로 하는 애향단이 운영되었다. 그 중 백미는 토요일 정오 학교 운동장에 모여 전체 종례를 마치고 제일 고학년을 단장으로 자기 동네의 이름을 적은 노란 삼각 깃발을 앞세워 사열 하 듯 차례대로 행진곡에 맞춰 하는 하교는 매주 장관이었으며 행여 아이들의 수가 많은 동네 애들은 괜히 어깨를 으쓱이기까지 했다.



 학교가 끝난 아이들은 꼭 동네어귀에 모여 구슬치기를 했다. 서너 가지 방법이 있었으나 백미는 꼴랑치기(구멍치기)였다. 구멍 예닐곱 개를 파 놓고 구멍에 손을 대서 다음 구멍에 넣어 빨리 돌아오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였다. 검지, 중지, 약지 등 구슬을 잡는 방법은 다 달랐지만 유난히 잘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손이 트는지도 모르고 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올 때는 불룩해진 바지 주머니를 만지며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희열에 빠지곤 했다.



 구슬치기가 슬슬 지겨워지면 나이 먹기 놀이를 했다. 양쪽 두 팀으로 나눠 전봇대를 하나씩 집으로 하고 기본 5살로 시작해서 둘이 손잡고 나이 적은 다른 한 아이를 터치하면 두 살 씩, 상대방 전봇대를 터치하면 10살, 나이가 같으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두 살 등을 먹게 된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자기보다 나이 적은 애를 자꾸 터치해서 더 나이를 먹게 된다. 가끔은 내가 먼저 터치했느니, 나이숫자에 태클을 걸기도 했지만 마냥 달리고 도망가고 쫓고 쫓기다 보면 100여 살이 금방 되곤 했다. 그 땐 이렇게 나이 먹은 게 큰 벼슬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간혹 놀이가 시시해진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집에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 놀이만큼 신명난 일도 드물었다.



 나락이 패이면서 허연 뜬 물이 고이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새를 보았다. 참새가 그 뜬 물을 먹으려고 자꾸 논바닥에 몰려 내려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아버지는 지팡이 길이만한 대나무의 한 쪽을 사등분으로 쪼개고 그 사이 나뭇가지 하나를 묶어 새를 보러 가는 우리에게 쥐어줬다. 그 대나무를 논바닥에 푹 꽂았다가 꺼내면 그 안에 흙이 들어간다. 이것을 새를 향해 힘껏 휘두르면 그 안에 있는 흙이 날아가 새를 쫓는 방법이다. 간혹 긴 줄에 깡통을 매달아 한쪽에서 흔들면 딸랑거리게 해서 새를 쫓는 방법도 썼다. 헌데 농사를 짓지 않는 집 아이들은 주말에도 즐겁게 노는데 새를 봐야 하는 건 정말이지 싫었다. 그래서 어떨 땐 아침도 안 먹고 아무 말 없이 몰래 나가 실컷 놀고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와 혼을 나기도 했었다.



 찬바람이 불고 논에 대어 놓은 물이 얼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썰매를 탔다. 나무로 상판을 만들고 바닥에는 두꺼운 철사를 구부려 작은 못으로 고정시키고 못 머리를 잘라 불에 달궈 탱자나무막대에 거꾸로 박아 티자형의 지팡이 두 개를 만들면 준비는 끝이었다. 대다수는 작년에 타던 썰매를 고쳐 타지만 아버지나 형이 만들어준 새 썰매라도 가지고 나설라치면 흡사 전장에 나가는 원기충천한 병사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편을 갈라 속도경쟁을 하기도 하고 지금의 아이스하키 경기처럼 작은 나무토막을 골대 안에 넣는 게임도 하고 일부러 얕게 얼은 쪽의 얼음에 충격을 줘서 금방이라도 깨질 듯 아슬아슬한 코스를 만들어 운을 시험하기도 했다. 그러다 얼음이 깨져 스케이트라도 빠지게 되면 근처에 피워 놓은 불에 젖은 양말을 말리기도 했는데 너도 나도 나일론 양말에 구멍을 내 먹기 일쑤였다.



 그 밖에도 못 치기, 비석치기, 연 날리기, 간첩놀이, 사루비아 꽃 따먹기, 활 놀이, 숨바꼭질 등 어린 시절의 기억은 셀 수 없이 많다. 오늘날 우리의 아이들은 풍요로운 물질 속에 산다. 어쩌면 예전보다 더 많은 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그 시절 친구들과 그 때의 추억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게 되는 건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 테고 또 조금은 삭막하고 개인화되어 있는 우리의 삶을 한번쯤은 뒤돌아보고 싶은 거울속의 내 모습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글 서희성 (익산참여연대 회원)
 

- 이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 자치 70호 회원글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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