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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 팔린 판례를 읽고 1

 

 

 


"판소리에 팔린 판례"
를 읽고 1

어린 소녀 판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보유자 춘전 성우향이 되기까지


  80평생을 판소리에 팔려 살아 온 외 길 인생 판례의 이야기를 읽었다.
  어린 시절 큰아버지 댁을 오가며 귀로 익힌 소리를 6~7세 무렵 정식으로 안기선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던 중, 고모 딸인 주난향 명창의 판소리를 유성기 음반으로 듣고 내 소리도 음반으로 나오게 해야겠다. 고 생각한 어린 판례는 김명환 고수를 만나 소리꾼의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학채가 없는 판례를 위해 정응민 명창 제자들의 북을 쳐주는 대신 소리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보기 드문 제자 사랑을 듬뿍 받고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밥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소리를 했다는 판례의 말을 들어 보자(86쪽)

  “긍게 날마다 소리를 안 할 때가 없어”야 뭣이 어쩌고“이런데도 공부를 했어.”뭣이 그때 춘향이는 어쩌고“이러고 한 삼십분을 허면 쬐끔 바늘 귀 만큼 뚫어져. 그래 갖고는 인자 한 시간, 세 시간 허면 팡팡 이렇게 소리가 팡팡 나와 부러”



  소리꾼이 된 판례는 어릴 적 꿈대로 레코드를 취입하고, 결혼해서 아들도 하나 낳고, 화양동에 집을 사서 하숙을 치며 지하에 연습실을 만들어 고수를 불러 소리 공부를 하며 잘 지냈는데~ 74년에 살림이 망해 삼양 동에 2만원에 3천 원짜리 월세 방에 살면서도 소리만은 놓지 않고 공부하던 그때 상황을 들어 보자(136쪽)


  “추접스런 애기 하나 할게 잉. 그 때 곤란해서 그 날 당일에 언제 연주를 할라면 뭘, 고기를 먹어야 되잖아, 그래서 한 근도 못 사고 반근 얼 이렇게 사다가 방, 저 부엌에다 놔두었는데 키우던 강아지가 그 놈을 묵어 부렀어. 그렇게 어치케 되아. 하하하, 호롯이 사다 놨는디 그래 갖고 그 개를 없애 버렸다고, 그런 적도 있고 참 피눈물 난 적이 많이 있었지. 그러지만은 왜 제자들에게 그런 말을 전해 주냐. 문은 소리는 소리고 내가 허는 건 분명히 놓질 않아야 되고 다른 것에 씰려 들어가지 말라고~중략~ 이다음에 남으라고” 


  “완창 공연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은 아니고, 해애 돼, 차곡차곡 쌓아 놔, 돈 많이 버는 사람은 돈을 그렇게 쟁이는 디 우리는 돈이 아니고 실력을 쌓아 놔. 발표 하나씩 허는데 얼마나 실력이 올라 근디요.”



  어려운 시절 완창 발표를 앞두고 겨우 고기 반근을 사다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키우던 강아지가 그 고기를 먹어 버린 것을 알고 너무 화가 나서 쫒아 버리겠다. 강아지를 집에 들이지 말라고 한 후 공연 끝나고 돌아오니 주인 집 아주머니가 탕을 끓여 먹으며 같이 먹자고 했어. 아무리 그렇다고 어찌 그럴 수가 있냐. 시며 두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롱이다롱이 강아지 두 마리를 애지중지 키우시는 것을 보았고, 소리를 잘 하려면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며 곳간 문 활짝 열어 놓고 제자들의 고픈 배를 채워주신 것을 보았다. 수업 때는 엄격하게 제자의 성음까지 고려해서 자신을 뛰어 넘은 훌륭한 소리꾼의 탄생을 기원하시며 소리 배를 채워 주시는 것도 보았고, 제자들 공연 때는 싱싱한 육회를 가지고 오셔서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시며 소리 잘하라고 격려 해주는 것도 보았다. 무엇보다 소리에 대한 평가만은 냉정하셨던 고 성우향 선생님의 단호한 모습도 보았다.



  그런데  성우향 명창이 생각하는 청중은 어떤 모습일까?

“(길고 긴 판소리 완창 공연 시) 근데 한 배 탄 것 같애. 손님하고 왜 그냐문은 슬픈디는 같이 그냥 슬프고 가사가 있으니까, ~ 중략~ 1970년대는 ~ 귀 명창 ~ 관중하고 저 연주자하고 ~ 대화 허는 식으로 허거등”춘향이가 이별을 했는디~“그라문은”얼씨구, 좋다! 이렇게 인제 추임새를 받아 주거든~ (145쪽)



  한 배를 탄 것처럼 추임새를 해 주던 따뜻한 손님(관객)을 그리워하던 성우향 명창의 그리움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소리꾼들의 사무친 그리움이 되어 공연을 앞두고 추임새를 해 달라고 통사정을 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냉담할 수밖에 없다. 보존회와 많은 소리꾼들이 제자 중심으로 판소리 보존에 힘쓰고 있을 때, 소리와 추임새를 스스로 배워 스스로 즐기던 귀 명창들은 한 분 두 분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시고, 지금 관객의 대부분은 소리와 추임새를 배울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기회를 놓친 그들과 다시 소리판이라는 한 배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곯은 배 움켜쥐고 판소리 보존에 앞장섰던 성우향 명창과 많은 소리꾼들의 노력에 + α, 즉 판소리 대중화에 대한 열망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판소리 대중화를 소리꾼들의 몫으로만 놔두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조차 가끔은 낯설게 느껴지는 판소리를 <판소리에 팔린 어린 판례>를 통해 부여잡으며,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의 노래가 판소리 대중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1978년 최초로 중요 무형 문화재 판소리 고법보유자로 지정된 김명환 명고의 믿음과 신뢰의  제자 사랑이 어린 판례를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춘향가 보유자 춘전 성우향 국창으로 영광을 누리게 했다. 두 분 떠난 하늘나라에서도 아름다운 소리가 어우러질 것만 같은 그 모습이 소리판은 물론 대한민국 곳곳에서 사제 관계로 맺어진 모든 인연마다 고운 꽃으로 천년만년 피어나면 좋겠다.


 



글 김광심 (한국판소리보존회 익산지부 사무장)


- 이 글은 참여와자치 소식지 71호 판소리로 전하는 마음의 편지(8)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