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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떠난 추억의 익산 시티투어



엄마와 떠난 추억의 익산 시티투어



  일요일 아침은 누구에게나 얼마간의 늦잠이 허락된 시간이다. 그러나 이날 아침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4월 24일은 익산참여연대와 함께 익산시티투어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늦잠의 아이콘인 엄마와 내가 버스를 타기 위해 무려 일요일 오전 10시 40분까지 문화원 앞에 나와야 했다. 집에서 문화원까지 거리는 걸어서 20분 정도. 아침을 먹을 여유까진 없었다.

  그렇다고 뭐 특별히 챙길 것도 없다. 몸만 가면 된다. 준비는 참여연대의 살림꾼 란희 씨가 살뜰히 준비했을 것이다. 일정도 익산시 문화관광과에서 짜놓았으니 무임승차하듯(사실 간식비까지 5천원을 냈지만) 편안히 가기만 하면 됐다. 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느슨한 마음과 빨리 가야 한다는 팽팽한 마음이 옮기는 발걸음을 따라 어지럽게 교차했다.
헐레벌떡 뛰고 뛰어서 문화원 앞에 당도했지만 시간은 5분이나 늦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란희 씨는 버스가 정차한 건널목 앞에 서서 우리 모자를 웃으며 맞아주었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예상대로 참여연대 회원들과 가족들로 가득 차있었다. 여행 출발 전 특유의 긴장된 분위기와 생기가 어우러져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하는 흥분도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익산 시민으로 삼십년 넘게 살아왔지만(엄마는 오십년 넘게 살아왔지만) 익산시티투어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익산 구석구석을 돌아볼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늘 주변에서 보고 있어도 실상 보지 못했다. 왜 가까이 있고 친숙한 대상의 가치를 폄훼하기 쉬운 걸까. 좀 더 소중히 여길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왕궁리유적지에 도착했다.

 이번 시티투어는 왕궁리유적과 보석박물관, 함벽정, 그리고 숭림사와 벚꽃터널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문화해설사 김현아 선생님과 오이카와 하토코 선생님이 인사하며 간단한 소개를 했다. 낭랑하고 명료한 음성, 거기다 유머감각까지 갖춘 김현아 선생님의 말솜씨에 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하토코 선생님은 미소를 예쁘게 지었다. 산뜻한 여행을 알리는 좋은 징조였다.



  왕궁리유적 박물관에서는 유적지 발굴 에피소드와 함께 백제인들이 어떻게 화장실을 이용했는지 등을 흥미롭게 들었다. 또 암키와와 수키와, 암막새와 수막새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았다. 기와에도 암수를 매긴 옛날 사람들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김현아 선생님은 수부(首部)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온 곳은 나라의 수도라고 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나 보다.



  보석박물관에 도착해서는 참여연대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나무 밑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입맛을 돋우었다.‘익산참여연대’라는 글자를 종이 한 장에 글자 하나씩 아이들과 함께 맡아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곱게 색칠을 했다.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형형색색 예쁘게 칠했다. 난 녹색만 칠하려다 부끄러워 갈색과 섞어 칠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보석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타지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었다. 한 일행은 수도권에서 왔는데 점심에 중앙시장을 방문했다가 맛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굶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것 참, 타지에서 익산까지 관람객이 오면 뭐하나 싶었다. 박수도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건데 말이다.



  보석박물관 내부 관람도 인상적이었다. 매번 지나치기만 했지 관람료를 지불하고 들어간 적은 없었다. 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웬 걸, 학교에서 배웠던 광물들이 총집합해 있었다. 지질학자를 꿈꿨던 적도 있었지 하면서 기억을 더듬듯 돌들을 눈으로 부지런히 훑었다. 옛 꿈들이 다시 빛을 발하며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소년시절 운석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펠러사이트의 결정체가 박혀있어 빛을 비추어보면 아름답고 투명한 초록색을 띠는 운석들. 이런 별의 조각은 고가에 거래가 된다고 한다. 값어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지구 아닌 곳에서 온 돌이라니, 어쩐지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어서 방문한 보석박물관 옆의 함벽정. 푸른빛이 감도는 저수지의 맑은 물을 그려 함벽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경관이 확 트여서 파노라마로 사진을 찍기에 좋았다. 자유로움에 순간 기분이 한껏 고양되는 느낌이었다. 시를 한 수 읊고 싶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풍광에 마음까지 여유로워졌다.

  이곳은 왕궁저수지가 준공된 1920년경 당시 지역부호였던 송병우가 경치를 즐기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목조건물인데도 소화기 점검표 마지막 날짜가 2015년 10월 28일로 되어있었다. 손잡이는 심하게 부식되어 쥐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 127호로 지정되어있는데도 이러한 관리 상태라니, 혀를 끌끌 차지 않을 수 없었다.



  함벽정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익산의 대표사찰 숭림사였다. 숭림사 에 도착하니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 사이로 나무들이 바람에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나뭇가지에 손을 뻗어 화답했다.

종교는 없지만 사찰을 좋아한다. 교회나 성당과는 달리 사찰은 현세와 내세를 이어주는 건축물이라는 특징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사찰에는 다리 하나 문 하나에도 각각의 의미와 상징이 깃들어 있다.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도 이런 점들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 하지만 나대신 문화해설사님들이 알차게 설명해주시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귀동냥으로 지식을 전해 들으며 불교의 깊은 세계에 잠시나마 빠져들었다. 부처님도 어디선가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잠시 동안 머물며 고인 시간이 언제까지나 기억되겠지 싶었다.



  시간이 다 되었다. 아쉽지만 이제는 떠나야 한다. 하루를 너무 알차게 보냈다고 엄마와 나는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외부활동에 약한 우리는 평소 같으면 한 곳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을 것이다. 밀도 있게 휴일을 보냈다는 만족감과 충일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익산시티투어에 참여하길 잘했다. 익산참여연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와 함께해 더 뜻깊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에 관계된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히 란희 씨에게.



글 고  훈 (익산투데이 기자, 정보공개 시민모임 회원)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 자치 75호 회원글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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