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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마당

[79호 소식지 회원인터뷰] 박형오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회원과의 만남

커피 협동조합(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형오 회원

 

 

 

 

익산역에서 로데오 거리를 따라 100미터를 지나다 마주치는 커피집. 매장 입구에는 왕궁물류단지내 아울렛 OUT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왠지 동네 사랑방 같아 부담 없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이는 곳. ‘솜리라는 이름부터 정감이 가고 친숙합니다. 커피숍이나 카페라는 말보다 커피집이 더 어울리는 커피집. 저의 첫인상은 그렇습니다. 일반 프렌차이즈 커피숍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커피집. 인터뷰 하는 동안 끊이지 않는 테이크아웃 손님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이웃집 사람들처럼 푸근합니다. 인터뷰 하는 동안 솜리커피 (공장)을 시작한 배경과 나름의 경영 철학을 듣고 있자니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음에 연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카페를 오픈한 지 3년이 넘었는데요. 익산과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익산에는 연고가 없습니다. ^^ 연고가 하나도 없는 익산이라서 카페를 오픈할 때도 오픈식을 따로 하지 않고 바로 영업을 했습니다.”

박형오 대표는 김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인 김제를 떠나 20여 년 간 서울에서 대학과 직장생활을 하다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무작정 익산에 내려왔는데 누군가를 만날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무척 외로웠다고 합니다.

 

익산참여연대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궁금한데요?

익산에 처음 내려와 생활을 하면서 중앙동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장경호 사장님을 만나 참여연대를 알게 되어 가입하게 됐습니다.”

익산에 내려온 지 3년 남짓이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박형오 대표는 익산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30년 토박이 못지않은 것 같았다.

 

고향이 김제인데 연고가 없는 익산, 그것도 번화가가 아닌 구도심인 중앙동에 카페를 오픈하게 된 이유가 궁금한데요?

처음 시작할 때 단순히 카페만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김제는 워낙 도시 규모도 작고 인구 구성자체가 노인 비율이 높고 대학이나 산업시설도 전무해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에 할머니를 따라 익산장()에 자주 왔었고 고등학교 때도 익산에 자주 놀러 왔었습니다. 그 땐 문화콘텐츠나 극장도 많았고 놀거리가 많았어요. 그 때의 기억들이 좋았고 어릴 적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익산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로스팅도 직접 하시면서 아내분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지, 아내분은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한데요?

서울에서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은행에 다니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익산으로 자원 해서 먼저 내려와 있었고 뒤따라 내려와 카페를 운영했는데 혼자하기 힘들어서 아내가 은행 일을 그만두고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잘나가던 광고회사라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요? 회사를 그만두고 커피숍을 하게 된 계기도 궁금한데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나이가 들었을 때 오너의 일가친척이 아닌 이상 오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소진사회답게도 제 자신이 소진되는 게 속도가 너무 빠르고 직업 특성상 영업과 접대를 많이 해야 하는데 성격상 잘 하지 못하고 체질에 맞지도 않았습니다. 전에 진행했던 광고로는 인텔코리아 서울지하철 공사 골프웨어 등의 광고가 있습니다.”

철학자 현병철님의 피로사회라는 책을 보면 자기착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지금은 노동자들끼리(정규직, 비정규직) 경쟁하게 만들고 자영업자들이 많이 생겨나 자기 착취를 하게 되어 소진되어간다는 골자예요. 실제로 광고회사를 하게 되면 그렇게 돼요, 착취가 심합니다. 광고를 하다보면 광고주의 대드라인에 맞춰 진행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광고를 제작하는데 한 달이 걸리는데 25일 만에 끝내달라고 요구하면 25일 만에 끝내야 해서 자연스레 야근하고 밤샘작업하고 주말까지 반납해야 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내일의 인생을 가져다 가불해 쓰는 느낌이 오거든요. 더 이상 자기 착취를 못하겠다고 판단해서 지금의 일을 시작했어요. 광고 일을 했을 때 아내와 같이 취미로 틈틈이 커피학원에 다녔어요. 제가 원래 커피를 마시면 과민성이어서 속이 좋지 않았었는데 마시다 보니 좋아졌어요. 익산에 내려왔을 때는 처음부터 커피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평생 업이었던 광고를 그만 두었으니 내가 할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아내와 함께 배웠던 커피가 생각났던 거죠.”

 

무연고지 구도심에서 3년 만에 가맹점이 두 개로 늘었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특별한 경영철학이 있으신가요?

솜리커피는 프렌차이즈지만 가맹비를 받지 않습니다. 가맹점주에게 교육비 정도만 받고 레시피와 거래처를 모두 공개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외의 비용은 받지 않습니다. 앞으로 가맹점을 계속 오픈 하더라도 솜리커피공장의 원두 제공과 인테리어를 통일 하는 것 외에는 가맹비는 따로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할 계획입니다. 솜리커피공장의 원두와 인테리어를 통일하는 것은 경험에 따른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그동안 모두 허용해 주다보니 가맹점에서 저렴한 원두를 쓰게 되고 기준을 낮추게 되어 브랜드 가치가 떨어져 결국 경쟁력이 없어지더라고요.“

카페를 직접 운영하시면서 그동안 사업적으로 어렵거나 느낀 점들이 있으신가요?

익산의 인구가 30만인데 소상공인들의 비중이 60~70%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분들이 폐업하고 이사를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익산의 인구도 붕괴될 거예요. 젊은 청년들도 떠나는 이유가 있어요. 일자리가 없거든요. 익산시의 인구정책을 보면 매우 근시안적입니다. 30만이 계속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주소 이전을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든 도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함께 해결하고 일정한 방향을 설정해서 꾸준히 진행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솜리커피로 이름을 지은 것도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생하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익산에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가 많지 않은데 앞으로도 눈치 보지 않고 냉철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할 말은 하는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전에 회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다 보니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있고 사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내용을 회지에 싣거나 권장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인터뷰 내용 중 주식과 투자에 관한 내용은 지난 소식지 75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16)- 투자에 관하여(2)’ 기고 내용 중 일부에 실린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 이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79호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