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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정상회담과 즐거운 상상(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학외교학 교수)

남북미 정상회담과 즐거운 상상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학외교학,평화학 교수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 합의 소식에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드디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 시작하나 보다. 문재인의 대가 약하다고 비판하며 싸드 추가 배치를 지시한다고 비난했는데 잘못 보고 잘못 생각했다. 그의 대범하고 치밀한 기획과 준비가 대단하다. 김정은의 배짱과 트럼프의 화통함도 놀랄 만하다.
  
   남북의 학자나 시민운동가들이 수십 번 수백 번 만나는 것보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몇 번 만나면 더 효과적이고, 정상들이 단 한 번이라도 만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해오던 터다. 200710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이 아주 좋았지만 실현할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아쉬웠기에 올해 안에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크게 진전시켜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4년 뒤 홍준표가 집권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트럼프가 미친놈이나 전쟁광이 아니라 교활한 장사꾼이요 유능한 협상가이기에 그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맺는 게 쉽다며 그가 탄핵당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던 터다.

   물론 문 대통령 말대로 여건이 좋지 않다. 나라 안팎에서 반대하고 방해하는 세력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남한의 수구 정당과 극우 언론은 문재인 정부엔 매사에 반대해도 트럼프 정부엔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한미동맹을 국가 목표처럼 삼고 있는 그들의 친미와 종미(從美)가 바람직할 때도 있는 것이랄까.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남북관계 진전엔 어깃장을 놓더라도 북미관계 개선을 좇아가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중국에도 그랬고 베트남에도 그랬듯, 미국이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할 조짐이 보이면 일본이 먼저 나설 수도 있다.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려면 거금을 건네야 한다. 1965년 일본이 남한에 준 독립축하금이나 경제협력자금명목의 식민통치 보상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큰 액수일 것이다.


   정상회담에 대한 가장 큰 반대나 방해는 아무래도 미국 내 군수산업 관련 세력에서 나올 것 같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에 미사일방어망을 비롯한 각종 첨단무기를 팔아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는 국가안보위원회(NSC)와 국무부 그리고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등의 책임자들이 의회, 언론, 이익단체, 여론 등의 견제와 감시를 받으며 대외정책을 조율하기 마련이지만,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크고 결정적이다. 트럼프 자신이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공언했기에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5월에 열릴 것이란 말이다. 더구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구체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테니 그가 더 적극적일 수 있다. 우선 김정은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중단 약속은 트럼프에게 큰 외교 업적이다.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을 풀어주거나 1968년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해 대동강변에 전시해놓고 있는 미국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되돌려준다면 선거를 앞둔 트럼프에게 적지 않은 선물이다.

 

대동강변에 전시되어 있는 푸에블로호 ©통일뉴스

  

문제는 주한미군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며 요구하는 것은 안전보장으로, 주요 내용은 평화협정과 국교정상화요, 핵심은 주한미군 철수 아니겠는가. 북한의 다른 요구 사항인 경제보상은 일본과 남한이 대신할 수도 있지만, 안전보장은 미국만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기가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냉전 종식 이후 주한미군의 가장 큰 역할은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대로 미국과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終戰), 불가침조약이나 평화협정을 맺은 뒤, 국교를 정상화(修交)하면, 주한미군이 계속 남아있을 명분이 사라지게 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빌미로 중국을 겨냥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통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할 수 있었는데, 북한이 더는 도발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이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첫째, 트럼프가 201611월 대통령선거 전후로 주한미군을 비롯해 해외에 배치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둘째, 201712월엔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통해 미국이 일본과 호주 그리고 인도와의 4각 협력(quadrilateral cooperation)을 증진해중국을 봉쇄한다는 이른바 인도-태평양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 주한미군이 빠진 것이다. 셋째,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주한미군이 북한에 적대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계속 유지되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김정은도 주한미군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수교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News1
 

 

  따라서 남북미 정상회담에 따른 나의 즐거운 상상은 다음과 같다
. 내가 오랫동안 주장해왔듯, 1단계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은 북한에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중단한다. 2단계로 북한은 과거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지니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한 채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으며 국교를 정상화한다. 3단계로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한다. 이 과정에서 올해 12월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나는 지난 1월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 한국의 촛불 시민들을 2018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지만, 노벨위원회 위원들은 마감일 이후에도 얼마든지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즐거운 상상이 꼭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