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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익산정착기


나의 익산정착기


안녕하세요.

저는 몇 개월 안된 신입회원 류귀윤이라고 합니다. 글을 써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슨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익산정착기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써 내려 가겠습니다.

저와 남편이 익산에 정착한지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익산이 고향이 아닌 저로서는 낯선 환경에서 정착하기란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농민회’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어서 견뎌냈던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도 있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름 행복한 세월을 보낸 것 같습니다. 처음 내려와서 허름한 집을 얻어서 생활하다가 2년만에 집주인한테 쫓겨 나고 농민회의 도움과 형님들의 도움을 받아 땅도 사고 좋지는 않지만 둘만의 공간인 내집이 생겼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내집이 생기니 이제는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생기고 익산에서 오래 살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시절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농민운동을 하고자 했던 저로서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98년 겨울 남편과 함께 익산에 정착했습니다. 연고지도 아니고 친척이 있었던 것도 아닌 정말로 황망한 땅에 내려왔을 때의 기억은 막막했던 것 밖에 기억이 남지 않네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99년 얼마되지 않는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기쁨은 정말로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뻤답니다. 국민의 먹거리를 내 손으로 농사짓는다는 것이야 말로 너무나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지요.

아이가 없었던 저희 부부에게는 운동하기란 참으로 좋은 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01년부터 익산농민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익산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을 함께 나누고 모든 일을 함께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후 5-6년을 농민회 활동을 하다가 우리집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답니다. 결혼 10여년만에 어렵게 쌍둥이를 낳고 나서 저는 아이를 키우는 재미에 운동은 잠시 접어두어야만 했지요. 그런데 쌍둥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로 힘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그 재미에 푹 빠져서 생활을 하다보니 나름 침체기. 정말로 아이키우는 것에만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그후 아이하나가 저희 부부에게 와주었고 지금은 아이셋을 키우는 워킹맘이랍니다.

나름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고, 할 일도 많았지만 아이 키우는 일만큼은 연습이 없듯이 어느새 저의 생활도 아이들에게 맞춰져서 생활하고 있더라구요. 참 이상하게도 말이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벌써 아이들이 6살, 5살 언제 컷는지 벌써 많이 컷네요. 이제는 말도 통하고 정말로 다 키워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 기분은 뭘까요?

지금도 남편은 농민회 사무국장을 맡아 농민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고, 저는 아이들과 재미있는 생활을 하고 있지요.

처음 익산이라는 낯선땅에 발을 들였을 때 정말로 아는사람 하나도 없어서 막막했지만 지금은 제2의 고향이고 제가 평생 살아야할 정말로 고마운 익산이 되었네요. 이렇게 참여연대와 연이 닿아서 좋은 사람 만나게 해준것도 너무 너무 고마운 일이구요.

너무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글을 쓴 것 같네요. 앞으로 어떤일이든 힘 닿는데까지 열심히 할 생각이구요. 함께 해주세요.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류귀윤 (익산참여연대 회원)


* 참여와자치 57호-2011년-1월 소식지 회원이야기 마당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