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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묻습니다.

 

 

 

안부를 묻습니다.

 

 

영농조합 사무실 냉장고 문을 열다가 몇 개 남지 않은 맥주캔을 보았습니다.

 

이곳에 와서 몇번인가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인사를 하며 지나쳤던 동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돌아가신 경우도 있었고 병상에서 몇 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계시고 또 정신을 멍하게 하는 안타까운 죽음도 가끔 있습니다. 죽음이야 어떤 죽음이던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그중에서도 더 안타깝고 가슴 아팠던 일을 한달전쯤에 겪었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집성촌이 많아서 함부로 오빠라는 호칭을 붙이기가 애매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호칭은 ‘아재’입니다. 아주버니라는 뜻도 있고 아저씨라는 뜻도 있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동네에서는 아재라는 호칭을 스스럼없이들 쓰기에....로마에 와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저도 이 동네 법에 따른거지요.

 

수봉아재.
이 좁은 면에서 층층 시하 눈들 무서운지 모르고 나이 어린 아내 이뻐서 손잡고, 팔짱끼고 다니던 사람, 누구는 자식 없나 싶을 만큼 끔찍이도 새끼들 이뻐하던 사람이었지요. 누가 물으면 잔말없이 그집 못살았다고, 지지리도 가난했다고 그나마 지금은 그 사람 덕에 그만큼이라도 사는거라는 말을 듣던 사람이었지요. 장례식장에서 누가 그러더라구요. 추석날 오후에 사과 밭에 나와 일하더라고...부지런하고 성실한건 그사람 따를 자가 없다고....
일년 농사 마치면 제가 일하는 영농조합에 맥주 몇박스, 소주 몇박스 사서 들여놔주던...마음 착한 사람. 키작은 권기사님에게 남 클때 뭐했냐고 놀려대던....아이 같던 사람. 장례식장에서 권기사님이 엉엉 울었습니다. 아니 그날 우리면 사람들 많이 울었습니다.


수봉아재 소식을 들은 사람마다 똑같은 반응. 놀래고...말을 못하고....눈물을 훔치던...차마 말을 못하고...울던 사람들.

폐암 말기가 되도록 쉬지 않고 일하던 그 사람. 폐렴이라고.....추석 전날 전화했더니 퇴원후에 놀러온다던.....아프다던 말 한마디 없던 아재가 많이 아프냐는 내 물음에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폐암 말기였는데 2주 동안 폐렴 약만 먹고 누워있었으니....그나마 추석때 밀린 일 때문에 퇴원 안했으면...일하다 안쓰러졌으면.....폐암인지도 몰랐을뻔 했습니다. 47살...수봉아재....

 

장례식장에서 올망졸망 서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아재의 자그마한 각시는 넋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고....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밥이 안 넘어가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밥도 먹지 않고 서둘러 일어섰습니다.

 

익산에서도 가끔 장례식장에 가곤 했지만 여기서 겪는 장례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며칠전 봤는데 느닷없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정말 이상합니다. 분명 있었는데....없어져 버리는것. 그 상실감이 정말 큼니다. 물론 가족들은 저보다 더 큰 슬픔과 상실감을 안고 살겠지요.

 

누군가 바쁜 일손 잠시 쉬러 영농조합 사무실에 왔다가 시원한 맥주 한캔 들이킬 수 있도록 내년에는 맥주랑 소주를 미리 사다 넣어놔야겠습니다.


 

아직도 자그마한 각시를 옆에 달고 반갑게 인사하며 영농조합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 수봉아재.

그냥 느낌에....아재는 각시 옆에....아이들 옆에 오래도록 있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래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저는 믿을랍니다. 그냥 곁에 있다고...

 

우리 가끔 안부 전해요. 아재


글 정희진 (익산참여연대 회원)

 
* 참여와자치 65호 회원글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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