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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균형찾기

 

 


[칼럼]

 


균형찾기



 균형하면 무슨 생각부터 떠오를까. 일단 가운데, 중심, 흔들리지만 양쪽을 적절히 반영하는 절충상태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균형이란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은 고른 상태를 말한다. 갑자기 왜 균형이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우리 삶을 둘러싼 현실과 환경이 너무도 엄중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삶의 조건과 질이 나빠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짚어보는 핵심이 무얼까 생각해보니 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라. 척박하다 못해 방향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사회의 현실은 일방적인 치우침과 균형의 상실이 가져온 결과다.



 우리사회를 법치국가라 한다. 헌법에 기초한 3권 분립의 민주주의 국가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견제와 균형이다. 권력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3권을 견제하도록 하여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입헌 국가들이 강력한 대통령제이거나 행정력을 우위에 둠으로써 균형이 상실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두드러진다. 국회만 입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국무회의)에도 입법권이 있다. 제도적으로 국회의 힘이 행정에 밀리는 부분이다.
 법과 제도의 집행을 보더라도 지금의 대통령 권한은 제왕적 통치가 가능한 구조다. 군과 공안통 검찰 출신들을 청와대와 행정 주요 보직에 두고서 정국을 장악하는 지금의 모습이 그렇다. 독립해야 할 사법부가 시녀화 되었다는 이야기는 군사독재시절에 흔히 듣던 말인데, 다시금 그런 이야기가 솔솔 들린다. 대통령이 국회와 행정, 사법부를 쥐고 흔드는 형국으로 균형을 상실한 공안 통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 삶을 돌보는 곳은 없고 벼랑으로 내모는 기관만 눈에 띄는 상황에서, 권력기관끼리는 물론, 권력 기관과 국민 권리사이의 균형도 어김없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다.



 우리사회의 놀라운 발전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격차와 불공정성이다. 한마디로 너무 한쪽에 치우친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 기업과 노동자의 균형, 건물주인과 임차인의 균형, 대형유통기업과 중소자영업자의 균형,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균형 등, 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균형을 깨는 요소로는 한쪽 당사자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개입과 정책이 그런 상황을 키우고 있다. 즉 친 재벌, 친 기업, 친 부동산적 정책이 균형을 깨고 차별과 격차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개발과 성장에 눈이 가는 자치단체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유통업체의 유치에만 공을 들이다 정작 중소자영업자의 밥줄을 끊는 경우가 계속되고 있다. 대형건축과 토지개발, 공단조성 등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에 쏟는 비중만큼, 서민들의 삶도 골고루 살피는 정책이 있어야 균형이 유지되지 않겠는가.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야당,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을 보더라도 균형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연이은 선거패배에 따른 책임과 혁신이 부각되었지만 내용은 없이 분란만 계속되는 상황이다. 기득권에 대한 공방을 보면 친노가 기득권이다, 비노가 기득권이다. 친노가 있다. 없다. 한마디로 좌충우돌, 설왕설래다.

 기득권이 무언가. 이미 획득된 권리다. 국회의원들에게는 의원직이고 연임에 대한 욕구다. 이를 보장받기 위해 무리를 짓는 것이고 정당의 요직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연스런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정말 기득권은 잘못된 것이고 없앨 수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아니다. 현재 중요 위치나 비중 있는 역할이거나, 많은 것을 가졌거나, 남들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기득권이다. 살면서 없을 수가 없고, 없앤다 해도 다시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기득권이 아니라 그 기득권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 가이다. 정치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중심 추는 공익성이다. 의원직은 물론 입법이나 정책, 활동 전반이 개인의 사적욕구나 사리사욕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욕먹고 없애야 할 기득권이다. 하지만 공익적 가치와 내용을 담는 활동으로 자신을 봉직하고 있는 기득권이라면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균형을 좌우하는 중심 추는 힘이다. 그래서 계파가 나오고 실력행사가 나온다. 독식은 판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의 기울기(이익)을 적절히 유지해주면서 이익과 권한을 많이 챙기는 것이다. 힘이 있으니 가능한 것이다. 그 힘을 얻기 위해 권력다툼을 하는 것이고 합법적 방식으로 선거가 있는 것이다. 정당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국제사회라고 예외인가.

 가치와 정당성을 상실한 힘만으로 유지되는 균형은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진 경우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가 나온다. 균형을 다시 맞추라는 것이다. 당내 균형부터 다시 맞춰야 전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변화와 혁신은 힘만으로 유지돼 온 균형을 새로운 중심추로 맞추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렸던 이들이 내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매번 말뿐으로 끝나는 이유다.



 균형은 한 개인의 삶에도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의 많은 부분을 어떤 곳에 사용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이 대부분을 먹고 사는 것에만 치중하고 산다면, 그 삶이 얼마나 나아지고 행복해 질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우리사회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나아질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
 내 삶을 더 나은 쪽으로 바꾸고 싶다면 내 자신을 위한 노력 못지않게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변화시키는 일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이웃과 힘을 보태어 진행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즉 개인의 삶도 나 자신을 위한 투자와 함께, 다른 한편의 사회적 투자와 노력도 같이 있어야 균형 잡힌 삶이 된다.
행복은 이 균형 있는 삶으로부터 나온다.
내 삶의 균형은 제대로 잡혔는가.
2015. 5. 25



글 이영훈 (익산참여연대 전 대표)


- 이 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와자치 71호 칼럼글에 실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