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청년, 익산참여연대!
이영훈(익산참여연대 지도위원)
76명의 청년, 장년이 모였다. 시민운동이 뭔지도 잘 몰랐던 때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통해 성장한 시민들의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였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대의 부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에서 생활공간에서, 삶의 조건을 바꾸고자 노력해왔던 젊은 청춘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없지만 의지와 열정이 불타고 있었다. 생활문화원과 노동자회, 청년회가 뜻을 모았고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사람들이 옳게 대접받고 서로를 아끼며 바르게 살아가는 사회...”
그렇게 창립선언을 선포하고 세상에 첫발을 떼었다. 1999년 3월 11일.
익산참여연대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비만 오면 새는 지붕 아래 여러 곳에 양동이를 두고, 젖은 집기와 악기를 햇볕에 말리는 일상이 되풀이 되었다. 겨울엔 얼어버린 사무실을 옹색한 난로만으로는 부족해서 체온으로 덥히며 나야 했다.
양푼에 밥을 비벼 나눠먹고 두부김치에 막걸리 한사발로 허기를 달래며, 기타를 배우고 풍물을 배우고 역사기행에 나섰다.
행정 감시와 집회, 예산분석과 정보공개, 아카데미와 토론회 등으로 사업은 계속되었고, 늘어나는 회원들의 눈들은 반짝이며 열정을 쏟아냈다. 전례 없던 사업들을 새로운 모델로 만들고 펼치는 데는 많은 힘이 들어야 했다.
그렇게 한걸음씩 배우고 익히면서 지역운동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있었다.
창립 초대 이사장직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불편한 몸으로도 행사 때마다 찾아주시고 활동가 한명 한명을 챙기던 아버지 같던 김현 교무님의 따뜻한 웃음.
치과를 운영하면서 대표를 맡아 바쁜 일상 중에도 뜨거운 열정과 함께 낭만과 품격을 보여주셨던 유형렬 대표님의 멋드러진 노래 한가락도 다신 들을 수 없겠지만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상근활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은 20년의 역사를 가능케 한 힘이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때론 끼니를 거르고, 가정을 돌볼 겨를도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았던 그들의 헌신과 노력은 단체를 힘 있게 움직이는 엔진과 같은 존재로 회원들을 단단히 결속시켰다.
제대로 된 월급조차 주지 못하고 교통비도 못되는 돈을 손에 쥐어주곤 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황폐해진 몸으로 상근을 그만두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어렵던 시절이라 그때는 정말 열정과 희생이 오늘을 버티는 밥이고 재산이었다.
20년 내내 단체를 지켰던 이들이 든든한 중심이 되고, 하나 둘 참여한 회원들이 힘을 보태는 단단한 바탕 위에서 단체는 하루가 다르게 커나갔다. 100여명의 회원이 한꺼번에 탈퇴하는 큰 위기도 맞이하고 크고 작은 시련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꿋꿋하게 나아갔다.
생각해보면, 의로움과 연대가 힘이었고, 굳건한 공동체가 시련과 분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다져지고 단단해지면서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들이 회원들의 삶에 녹아들었다. 어제와 다른 익산, 시민의 생활은 그런 노력들의 또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익산참여연대는 그렇게 성장했고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청춘을 불사르던 이들의 머릿결은 어느덧 희끗희끗해지고 아이들이 자라 어느덧 청년이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2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다시 변하고 있다. 시대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지금은 어디에 서있는지 차분히 돌아볼 때다. 공동대표제가 되고 운영위원이 젊어지고 회원도 늘었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해지고 사업의 집중성과 투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풀어가야 할 숙제다.
청년과 여성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다양한 경험과 능력 있는 회원들을 플랫폼으로 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
촛불혁명이후 달라진 환경과 시대변화를 잘 헤아려서 비전과 전망, 사업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시선을 어디에 두고 힘을 모아갈 것인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때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채워야 하는 게 많은 현실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회원들이 있어 오늘을 이겨내고 나아갈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회원들의 몸과 삶에 새겨진 20년의 세월은 익산참여연대의 정신이고 가치가 되었다. 회원 하나하나가 힘이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다. 익산참여연대는 새로운 시대, 시민주권시대를 맞아 스무 살 청년으로서의 몸짓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변함없이 시민 곁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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